성남FC의 홈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은 홈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후반 도중 발표된 관중수는 1만2,187명으로 올 시즌 성남의 K리그 클래식 홈 경기 최다(시즌 최다는 광저우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1만3,792명)였다. 최근 성남의 상황을 놓고 보면 머리가 끄덕여지는 숫자였다. 시민구단 전환 2년 차에 과거 기업구단 시절의 모습을 되찾았다. 성남의 이름을 앞세워 강팀들을 연거푸 꺾는 모습에 10년 이상 움직이지 않던 시민들의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최근 성남의 상승세는 K리그 최고조였다. 6월 20일 광주와의 17라운드를 시작으로 27라운드 부산전까지 11경기에서 7승 4무를 기록했다. 무패 행진을 거듭한 성남은 리그 3위까지 뛰어오른 상태였다.
패배를 잊은 성남이 28라운드를 맞아 홈으로 불러들인 팀은 리그 선두 전북이었다. 지난 5월 31일 홈에서 간판 공격수 황의조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둔 기억이 있기에 성남은 또 한번의 결과를 기대했다. 최근 성남의 위력은 강력한 수비에서 나온다. 11경기 무패를 달리는 동안 고작 4실점만 했다. 무실점 경기가 7차례였다는 것은 2실점을 한 경기가 한번도 없었다는 뜻이다. 10골을 기록하며 득점 3위를 달리고 있는 황의조의 성장으로 걸출한 골잡이를 확보하며 승리의 확률은 더 높아졌다. 황의조의 뒤에는 돌아온 패스마스터 김두현이 있다. 이 공수에 걸쳐 김학범 감독이 이뤄놓은 조화는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늘 강조하는 바로 그 밸런스였다.
반대로 전북은 밸런스를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경기력은 시즌 중 최저점에 떨어진 상태였다.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최근 4경기에서 1승 1무 2패, 그 중 2패를 올 시즌 들어 처음 겪는 무득점 패배였다. 2위 수원과는 승점 7점 차로 아직 여유가 있지만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더 추격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북은 주중에 쉰 다른 팀들과 달리 챔피언스리그 일정 탓에 3주 연속 일주일에 2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이어왔다. 경기력과 밸런스 찾기에 몰두한 최강희 감독은 이날 다시 한번 선수 조합을 바꿨다. 부상에서 회복된 최보경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아왔고, 이근호는 측면 공격수로 위치를 옮겼다. 나흘 전 치른 감바 오사카와의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던 최철순은 원래 자리인 오른쪽 풀백으로 이동했다.
경기 전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처럼 양팀 모두 단비가 되어 줄 승리를 갈망했다. 기세를 끌고 간 쪽은 성남이었다. 새로운 아이콘인 황의조가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전북 수비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전반 13분 측면에서 올라 온 크로스를 황의조가 정확한 헤딩 슛으로 연결했지만 권순태의 선방에 걸렸다. 4분 뒤 김성준의 침투 패스로 맞은 1대1 장면에서 레이나가 날린 왼발 슛도 권순태가 동물적인 반응으로 막아냈다. 1분 뒤 남준재의 기술적인 플레이에 이은 슛도 전북의 수비를 흔들어놨다. 성남의 폭풍 같은 공격이 몰아친 반면 전북의 공격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했다. 공격을 조립해야 할 루이스의 패스가 부정확했고, 공격수들의 볼 컨트롤이 부드럽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북의 공격은 전반 26분에야 처음으로 날카로움을 발휘했다. 박원재의 측면 크로스를 이근호가 쇄도하며 슛까지 연결했지만 김철호의 몸을 던진 수비에 막혔다. 그리고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 경기 결과를 가른 이득을 봤다. 전북의 공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동국이 문전에서 공을 차지하려는 순간 김두현의 발에 채여 넘어졌다. 김두현은 순간적으로 발의 속도를 줄이며 충돌을 피하려 했지만 이민후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동국은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직접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넣었다.
이 선제골로도 전북은 흐름을 가져가지 못했다. 성남은 전반 34분 황의조가 놀라운 스피드와 순간 기술로 윌킨슨은 완전히 제치고 나가 슛까지 처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권순태를 뚫지 못하고 막혔다. 이동국이 성남의 윤영선에게 밀린 반면, 황의조는 윌킨슨을 속도와 기술에서 압도하며 계속 찬스를 잡아갔다. 전북은 전반 막판 한교원이 역습 상황에서 성남 수비를 뚫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며 추가골을 넣는 데 실패했다.
전북이 흐름을 잡은 것은 후반 들어서였다. 허리에서 적극적인 압박과 수비로 김두현, 레이나의 움직임을 차단한 것이 주요했다. 전방으로 연결되는 성남의 패스가 좋지 못하자 윌킨슨과 김기희는 전반보다는 수월하게 황의조를 밀어냈다. 패스 흐름이 살고 수비가 안정되면서 전북은 전반과는 다른 정돈된 플레이가 나왔다.
최강희 감독은 후반 12분 먼저 2장의 교체카드를 꺼냈다. 그것은 전북이 지금 맞이한 상황을 딛기 위해 최강희 감독이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이었다. 계속되는 일정 소화로 지친 이재성을 빼고 정훈을 투입했다. 수비력이 좋은 최보경에 활동량과 순간 압박이 뛰어난 정훈이 더해진 것이다. 이재성도 기본적으로 수비 가담과 차단 능력이 좋지만 정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선수였다. 2명의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본격 배치였다. 중원 조합을 바꾼 전북은 남은 30분 가량의 경기 운영을 수비밸런스 강화에 우선점을 두겠다는 것을 선포했다.
뒤이어서는 이근호가 빠지고 레오나르도가 들어갔다. 스피드와 드리블을 이용한 개인 전술이 뛰어난 레오나르도의 투입은 카운터의 위력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미였다. 레오나르도는 교체 투입 후 이동국보다 더 앞의 공간에서 움직이며 최강희 감독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효과는 곧바로 나왔다.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가동한 전북은 허리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계속 카운터를 날렸다. 루이스의 발끝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레오나르도와 한교원을 이용한 측면 흔들기도 이뤄졌다.
후반 15분 전북에게 승부를 끝낼 수도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왔다. 계산대로 레오나르도가 빠른 스피드로 성남 수비를 무너트렸고 골키퍼 박준혁보다 한 템포 빠르게 공을 치며 이동국에게 단독 찬스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마무리를 기대한 이동국의 슛은 골대를 넘어가고 말았다. 전북의 김기희는 후반 23분 경고 하나를 각오한 태클로 황의조를 넘어트렸다. 국가대표팀의 기존 수비수와 새롭게 발탁된 공격수의 대결은 흥미로웠다. 김기희는 후반에 윌킨슨 대신 황의조의 마크를 맡았고, 터프한 플레이로 전북의 정신력을 보여줬다.
성남은 후반 24분에 모처럼 전북 골문을 위협했다. 뜬 공을 놓고 문전에서 적극적인 경합을 한 끝에 김두현의 패스에 이은 황의조의 슛이 낮게 깔려 예리하게 날아갔지만 이마저도 권순태에게 막혔다. 김학범 감독은 후반 26분에는 김두현을 빼고 박용지를 투입했다. 이미 앞서서는 남준재 대신 김동희가 들어가 있었다. 두 선수는 긴 거리를 달리는 스피드와 후방 침투가 위협적인 스타일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이들의 투입으로 세밀한 패스 전개보다는 적극적인 경합과 스피드의 우위로 전술 방향을 돌리겠다는 뜻을 보였다.
후반 33분 전북이 또 한번 쐐기골의 찬스를 놓쳤다. 역습 상황에서 레오나르도와 루이스의 연계가 만들어 준 완벽한 찬스에서 이동국의 슛은 골포스트 아래쪽을 맞고 나갔다. 성남도 3분 뒤 빠른 공격 전개에 이은 황의조의 오른발 슛이 나왔지만 공은 골대를 외면했다. 후반 44분에는 전북에게 행운이 따랐다. 장학영의 크로스가 전북 수비를 통과했고 박용지가 몸을 던져 슈팅까지 연결했다. 공이 골대 안으로 향했다면 꼼짝 없이 당할 장면이었지만 공은 반대편 골포스트 옆으로 지나갔다. 전북도 후반 추가시간 두 차례 카운터를 이용해 김동찬과 레오나르도가 날렸지만 역시 골로 이어지진 못했다.
프리킥에 의한 성남의 마지막 공격이 무산되고 후반 추가시간 5분마저 종료됐음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렸다. 그제서야 전북은 승리에 확실히 안도할 수 있었다. 페널티킥, 그리고 수비에 중점을 둔 경기 운영. 올 시즌을 관통하는 전북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방식으로 얻은 결과였다. 그러나 한 시즌을 내내 공격적인 축구, 3~4골을 넣기 위한 방식의 경기를 할 순 없었다. 큰 고비를 넘기 위해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얻은 승리는 전북과 최강희 감독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전북이 1-0으로 승리한 것은 인천과의 12라운드 홈 경기 이후 16경기 만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시진을 치르다 보면 높낮이가 있다. 지금 전북이 내려 온 상황이었는데 힘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줄 승점 3점이라 생각한다. 주중 경기로 선수단 전체가 피곤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아 승리했다”고 말했다. 실리적인 경기 운영을 했지만 홈으로 돌아가서는 여전히 공격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현재 찬스를 살리지 못하는 공격수들의 자신감 회복이 중요한 과제였다. 전북은 최근 4경기에서 필드골이 3골에 불과했다. 최강희 감독은 “훈련 밖에 답이 없다”고 강조하며 “A매치 휴식기 동안 선수단 전체가 자신감과 경기력을 끌어올리도록 준비하겠다”며 열흘 간의 시간을 잘 활용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김학범 감독은 올 시즌 리그 경기 최다 홈 관중 앞에서 패배한 것을 너무나 아쉬워했다. 꾸준한 증가 추세긴 하지만 만일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성남은 흥행 면에서도 큰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다. “계속 홈팬들이 늘어나고 있어 기쁜데 오늘 같은 경기에서 결과를 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게 김학범 감독의 얘기였다. 무패 행진을 마감한 성남은 지난 6월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성남은 4월부터 5월까지 리그 9경기 연속 무패(4승 5무)가 끊긴 뒤 이후 5경기에서 2무 3패의 부진에 빠졌다. 김학범 감독은 “슬럼프가 오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두려워 할 이유도 없다.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이겨 낼 능력이 있다. 이어지는 경기가 중요하다.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전북은 A매치 휴식기 후 9월 9일 울산(원정), 12일 서울(홈), 16일 감바오사카(원정)를 상대한다. 사나흘 간격으로 이어지는 또 한번의 강행군이다. 울산 원정은 대표팀에 차출되는 3명의 선수(이재성, 김기희, 권순태) 없이 치러야 하는 경기다. 특히 감바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은 올 시즌 전북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과를 위해 꼭 넘어서야 한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전북은 승리 혹은 득점을 통한 무승부를 거둬야 한다. 중요한 고비를 넘긴 전북은 1강이라는 부담을 극복할 수 있는 경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전북에게 일격을 맞은 성남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열흘 간의 A매치 휴식기 후 확인할 부분이다.
성남=서호정 기자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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