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감독, 그런 감독을 맞는 것도 싫다. 그러나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최진한 감독이 경질되었다 하오. 전해 듣게 된 그 흉한 소식. 아버지.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이었다. 그 때, 새로운 감독을 데려오기가 서로 사이에 말이 맞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얼이 빠져 주저앉을 참에 난데없이 밧줄이 내려온 것이었다. 그때의 기쁨을 그는 아직도 간직한다. 클럽하우스. 설득자들 앞에서처럼 시원하던 이리란, 그의 지난날에서 두 번도 없다.
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에 설득자들이 앉아 있고, 팬은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구단 직원과, 등산복을 입은 대표이사,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직원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동무,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감독을 원하시오?"
"조광래."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직원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조광래도, 마찬가지 국내파 감독이오. 실력없고 고지식한 옛날 사람을 영입해서 어쩌자는 거요?"
"조광래."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영광을 왜 포기하는 거요?"
"조광래."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직원이 나앉는다.
"동무, 지금 구단에서는, 새로운 감독을 위한 지원책을 궁리 중이오. 동무는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영광을 지켜보게 될 것이며, 구단의 존중을 받을 것이오. 많은 사람들이 동무가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소. 축구센터 공원에 기어다니는 개미도 동무의 선택을 반길 거요."
"조광래."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직원이, 다시 입을 연다.
"동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팬 생활에서, 지역주의자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따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구단은 동무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동무가 구단과 선수단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동무는..."
"조광래."
대표이사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장교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명준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른 팬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 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방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따.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창원이군."
설득 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조광래라 지만 막연한 얘기요. 외인 감독보다 나은 이가 누가 있겠어요. 많은 축구팬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국내파 써 봐야 외인이 낫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지금 경남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경남엔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밝은 미래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팬 생활을 통해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조광래."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구단 내 일터를 응원하는 한 사람이, 옛 추억에 구단이 나아가는 걸 막는다고 나서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 3백만 도민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구단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조광래."
"당신은 오랫동안 경남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구단은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구단을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조광래.'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종기가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무식한 사람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구단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구단은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구단의 품으로 돌아와서, 구단을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옛 망령에 사로잡히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구단과 함께 하는 경우에,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명준은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조광래."
설득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단장을 바라볼 것이다. 단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