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화학원 가서 선생님이랑 1:1 상담을 했어.
상담할 때 오게 된 이유 물으시길래
전형적인 이야기에요. 어릴 때 그림 좋아서 만화가 하고 싶다 했는데 부모님이 너무 반대하셨고 남들 따라서 전혀 상관 없는 진로 갔죠. 난 내 꿈이 이런데 무서워서 만화를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망설이고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이렇게 살면 내 인생일까 부모님 인생일까. 였거든요. 이게 취미가 되든 실패하든 한 번이라도 배워보고 포기를 완전히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왔어요.
라고 말하는데 목에 뭔가 걸린 느낌이 들더라.
근데 이유를 들은 학원 강사가 진지하게 그러더라고
요샌 시장이 넓어져서 전공 안 하고 취미로 하다 진짜 작가되는 사람도 많아요. 웹툰도 요샌 에이전시 생겨서 데뷔하는 길도 생기고 네이버, 다음만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전보다는 훨 수월해요. 그러니까 꿈 포기하지 않게 최선을 다 해서 가르쳐드릴게요. 라고.
그 말 들으니까 목에 걸려있던 10년이란 시간이 뒤로 넘어가더라. 물론 그 말이 학원 등록을 위한 립서비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까 내가 만화 학원 문을 열고 20분도 안 되는 상담을 받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더라.
그 10년동안 나는 남들이 말하는 거처럼 재능이 없는 걸까? 내가 시장성이 개판인 이 곳에 뛰어들어서 얻는 게 뭐지? 도전만화나 공모전을 봐도 다 나보다 어리거나 동갑이야. 난 너무 늦었어. 이제 조금 있으면 졸업할 거고 취직할 거고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의 힘을 내요 미스터 김처럼 되겠지.
동생 빼고 다른 가족들은 나한테 재능따위 없다고 말했고 지원해줄 돈도 힘도 아무 것도 없다고 했는데 가족들의 손을 놓아가면서 까지 내가 할 용기가 있을까? 라는 생각만 했거든.
근데 얼마 전에 내가 만화 학원 다닌다고 했을 때 (물론 가족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공인들도 그렇고 내 주위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잘 될 거다 그러더라.
축구만화니깐 장르도 희귀하고 좀 있으면 월드컵이니까 꼭 인기 끌 수 있다고. 홍보는 내가 해줄게. 나 이래뵈도 유명인임. 그러는데 너무 고마웠어. 가장 내 편이 되어야할 사람들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인데 너무 당연한 거처럼 말해줘서
(물론 앞에서 대놓고 씨발 성공할 거 같냐? 븅신아. 라고 하기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지만.)
내가 성공할지 아님 실패해서 군인으로 입대할지 아님 병원에서 일할지 백수가 될 진 잘 모르겠지만.
그걸 떠나서. 오늘 깨달았어. 아 난 만화가 해야겠구나. 난 이거 못 하면 되게 불행하게 살 거 구나. 라고.
그래서 학원은 다음 주 금요일부터 다니기로 했어.
1달 밖에 못 듣는 수업이라 타이트하게 나갈 거래. 수업도 길게 할 거고.
(물론 계속 수업 듣고 싶어. 1달 배운다고 다 배울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
1달 동안 동작이랑 배경 다 배울 거고 어느 정도 배웠다 싶으면 컴퓨터로 작업도 할 거래.
생각 중인 축구만화를 빠르면 1월 말 늦어도 3월 중순부터는 인터넷에 올리고 싶다고 했니깐
(물론 배우는 거 뿐만 아니라 나한테 달린 일이겠지)
그리고 응원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