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목)부턴가. 갑자기 멀쩡한 몇 웹툰들의 별점이 럭키짱급으로 하락하고 댓글창에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만화 내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으니 이번 이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매우 의아할 것이다.
놀랍게도 그 원인은 해당 작가가 SNS를 통해 김자연 성우를 옹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시 모르니 간략하게 설명하면, 한 넥슨 게임 캐릭터의 목소리를 맡은 김자연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인증한 직후, 넥슨이 해당 성우를 교체하기로 결정한 사건이다. '해고'는 아니다.)
본 사건에 대해 나도 트위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지만, 140자의 제한이 필요없는 글로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1. 옹호한 작가들은 모두 메갈인가?
일반적으로 어떤 이슈를 놓고 입장 및 의견을 제시할 때는, 청자의 편의를 위해 크게 '찬성' '반대' '중립' 3가지로 분류하기 마련이다.(중립, 기권, 관망 등을 제외하고 2가지로만 분류하는 것은 때때로 혹은 자주 위험하다)
그러나 찬성 혹은 반대로 묶인 그 내부를 살펴보면 저마다의 이유와 입장은 무척 다양한 법이다.
작가들의 트윗을 읽어보면 그 안에서도 개개인의 개성이 느껴진다. 가령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해츨링은 "만약 누군가 일베 옷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옷을 입었다고 해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면 전 그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티셔츠 자체보다는 '업무 외적인 이유'로 직업상의 불이익을 당한 사실에 집중한다.
반면 번역자 김완은 넥슨의 평소 태도와 달리 유독 '해당 사건에 대해서만' 피드백이 재빨랐던 점을 지적한다. '페미니스트 티셔츠'가 불이익의 원인이 된 점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고, 티셔츠를 샀다고 해서 메갈이라고 볼 수 없다거나, 메갈리아4는 온건한 자세로 페미니즘을 주장하며 기존의 메갈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본인은 메갈 회원이 아니지만 메갈이면 뭐 어쩔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악플들의 구호는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2. 넥슨의 행동은 정당한가?
사건 초기에는 이게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넥슨과 성우 양측으로부터 이 교체건이 '부당해고'는 아니며, 작업물을 얻고 작업에 대한 보수를 지급했으나 넥슨 측이 사용하지 않기로 했을 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규직 직원이 아니며, 해당 계약건을 모두 이행하여 완료하였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맞다.
이후 넥슨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부분이나 근래 넥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예를 들면 유례없는 재빠른 피드백에 대한 부분, 서든어택2 등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과도한 성상품화와 위 사건의 비교, 진경준 검사장 건 등으로 바뀌어 조금씩 언급되고 있다.
3. 독자들의 행위는 정당한가?
(사실 이 부분을 쓰고 싶었는데 윗부분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조금 지쳤다.)
이 사건에 대한 일부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별점&베댓테러, 해당 작품 및 연재처에 대한 불매운동, 그리고 해당 작가 및 웹툰작가 전반에 대한 악플공격 정도.
불매운동 자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가 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수단이며, 과거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근래 남양유업 불매운동 등 의도의 정당성과 효과를 모두 얻은 사례도 충분하다. 불매운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바로 이 '의도'에 있을 것이다. 김제동 퇴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처럼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 역사에 남은 사례들처럼 가치가 있다고 받아들일 지는 그야말로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달린 일이겠다.
별점테러도 어쩌면 이 쪽으로 포함시킬 수 있을까? 독자로서 피드백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효과는 잘 모르겠다.
심각하게 보고 있는 부분은 바로 작가들에 대한 공격이다.
항상 젠더 갈등에 있어 남초 커뮤니티의 선봉장 노릇을 해온 나무위키는 이번에도 '유명인 반응'이라는 항목을 만들어(항목이 길어져 22일 새벽에 별도 분리되었다) 작가들의 발언을 모두 박제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이를 '살생부'라고 정의하는 반면, 위키 작성자들은 가치 판단을 독자 개개인에 맡기며 기록 자체에는 아무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겉으로 내세우는 중립지향적 태도와 달리, 작성 초기에는 박지은 작가 등 옹호 작가에 대한 명백한 공격 의사가 있었으며,
지금도 옹호 반대 및 "관망" 의견도 함께 박제하고는 있으나, 옹호측 리스트 작성에 화력이 집중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일부 유저들은 위 리스트를 이용해 작가들을 손쉽게 공격하며, 그들의 반응을 재빨리 위키에 기록한다. 위키는 누구나, 해당 문서 역시 가입만 했다면 작성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필연적이다. (겉으로 중립을 표방하면서 작가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면 그게 더 심각한 일이다.)
악플러들의 행동은 대체로 비슷한데, 발언자가 메갈이 뭔지 잘 모른다고 판단되면 나무위키의 메갈리아/사건사고 항목을 소개하며 메갈=여자일베설을 전도하고, 일베와 IS를 예로 들며 설명하려 한다. 약간 알고 있다고 판단되면 메갈리아4=메갈이므로 저 티셔츠는 메갈을 후원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잘 알고 있다고 판단되면 "메갈을 옹호"했다며 비난한다. SNS활동을 즐기는 것 같으면서 해당 사건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웹툰작가(레바 등)에게는 입장표명을 강요한다.
일베=메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베 기자가 KBS에서 멀쩡히 근무하는 것에 분노하는 만큼 "메갈 티셔츠" 성우가 멀쩡히 일하는 것에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에게 일어난 결과는 꽤 많이 다른데, 이에 주목하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전자에게는 그저 침이나 뱉고 말아도, 상대적으로 만만한 후자에게는 주저없이 권력을 휘두른다. 환불 릴레이에 레진코믹스 운영진이 회의에 들어가고, 넥슨이 성우 교체로 답변하는 것에 환호하면서, 전자에 대해서는 '에이 그건 우리 힘으로는 안 되잖아'하며 회피한다. 개인적으로는 건물주가 올린 임대료 부담을, 아르바이트의 최저임금을 깎아서 충당하는 사장들의 모습이 떠올라 퍽 씁쓸하다.
이제 와서 말하기 좀 뻘쭘하지만, 일베=메갈이라는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갈리아/사건사고 항목도 대부분은 팩트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정말이다)
하지만 항목까지 분리할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사건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어째서 이게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을까.
과거 과도한 심의에 반발하며 작가와 독자층이 선도했던 노컷 캠페인의 로고를 루리웹의 한 유저가 변형시켰다.
남이 하는 심의는 안되고 자기가 하는 마녀사냥은 괜찮다는 대중의 심리가 매우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