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일본생활 초창기는 지독했다. 주변에서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무섭고 두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않고 해외로 떠나면, 3년간 국내로 돌아올 수 없다’는 규정 기한이 5년으로 개정됐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 때 도쿠시마에서 한솥밥을 먹은 선배 배승진(안산 경찰청)의 도움이 컸다. 후배가 빠르게 적응하도록 전혀 한국말을 하지 않았다. 철저히 일본어로 대화했다. 입과 귀가 열리자 일본 선수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코칭스태프의 도움도 있었다. 프로 데뷔전인 2010년 10월 후쿠오카와의 수중전에서 오승훈은 4실점을 했다. “왜 대학생을 투입해 망신을 당하느냐”는 도쿠시마 팬들의 야유가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미노베 감독은 다음 경기에도 그를 출전시켰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교토 시절 가까워진 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도 힐링이자 자극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그를 만나면서 자신도 언젠가 같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진현이 형처럼 대표팀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다. 형이 후보로 시작해 지금 자리에 서기까지 과정을 곁에서 보고 배웠다. 나도 일본에서 많은 걸 느꼈지만, 또 다른 나를 찾아야 했다. 챌린지(2부리그)는 의미가 없었다. 당연히 클래식 팀을 원했고, 이뤄졌다. 이제는 진가를 보일 일만 남았다.”
http://m.sports.naver.com/soccer/news/read.nhn?oid=382&aid=0000318794
코칭스태프의 도움도 있었다. 프로 데뷔전인 2010년 10월 후쿠오카와의 수중전에서 오승훈은 4실점을 했다. “왜 대학생을 투입해 망신을 당하느냐”는 도쿠시마 팬들의 야유가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미노베 감독은 다음 경기에도 그를 출전시켰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교토 시절 가까워진 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도 힐링이자 자극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그를 만나면서 자신도 언젠가 같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진현이 형처럼 대표팀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다. 형이 후보로 시작해 지금 자리에 서기까지 과정을 곁에서 보고 배웠다. 나도 일본에서 많은 걸 느꼈지만, 또 다른 나를 찾아야 했다. 챌린지(2부리그)는 의미가 없었다. 당연히 클래식 팀을 원했고, 이뤄졌다. 이제는 진가를 보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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