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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축구
2013.03.25 10:32

[Fever Pitch 04] 서정원

조회 수 167 추천 수 3 댓글 4




(이미지출처 : 서울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이름서정원

생년월일: 1970-12-17

소속안양 LG - 스트라스부르 수원삼성 - SV 잘츠부르크 - SV 리트

포지션측면 미드필더·측면 공격수

: 173cm

A매치 기록: 87경기 16

프로팀 기록: 310경기 73

 

언제였던가유럽축구팬의 시각으로 바라본 K리그에 대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일방적인 시각이 아니라 중립적인 시각에 풍부한 배경지식과 유려한 글 솜씨로 자연스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칼럼을 쓴 네티즌이 지적한, K리그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가 레전드들에 대한 대우였습니다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다음으로 감독들의 전술조명이나 예전 레전드들의 대우가 상당히 부적절하다이건 구단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축구에 흥미를 막 가진 사람들도 케이리그 구단 레전드들을 확연히 알고 있는 거 많이 못 봤다그러나 AC밀란을 막 좋아한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바레시와 말디니를 알게 되더라각 구단 홈페이지에 레전드들의 과거사나 자세한 경력들이 연재된 곳도 못 봤다… 분명 구단 오피셜에 스페셜 영상 하나 만들 정도의 영상자료가 있을 텐데 그런 거 만들어서 공개하는 구단조차 못 봤다사실 이런 거 보면 언론만 장치를 못 만드는 게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축구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에게 바르셀로나의 레전드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면 크루이프가 튀어나오고 그가 어떤 팀에서 뭘했고감독으로서는 어땠고축구 철학은 어떤지 다 나오지만 K리그 팀인 수원성남의 레전드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아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물론 팀 역사만 100년이 넘은 팀과 이제 30년을 향해 다가가는 리그에서 레전드를 찾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어떻게 보면 그만큼 K리그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 상에 많이 없다는 거죠제가 굳이 네번째 Fever Pitch를 서정원으로 정한 것은 다른 것보다는 이런 면이 가장 큰 작용을 했습니다. K리그에 대해서 더 알리고 많은 정보가 인터넷 상에 돌아야 그만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죠물론 서정원을 택한 것은 이런 이유에 더해 제가 수원 서포터라는 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축구 커뮤니티에 가면 대다수 많은 이들의 시선은 유럽축구에 관심이 쏠립니다굳이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유럽축구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K리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사실이죠하지만 이런 유럽축구팬들도 주목하는 K리그 경기가 있습니다흔히 ‘K리그 슈퍼매치라고 일컬어지는 수원과 서울의 경기입니다이 두 팀이 이렇듯 주목을 끌게 된 이유는 서울이 2004년 연고 이전을 하기 이전에 안양에 연고지를 두고 수원과 지지대 더비를 벌였기 때문이죠많은 사람들은 서울이 연고이전을 한 뒤에도 수원과 서울 사이에 라이벌 감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 관심을 가졌고 언론들도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깔고 들어가 수원과 서울을 라이벌 관계로 몰아갔습니다정작 중요한 양 팀 팬들의 인식 수원 팬의 경우서울은 연고이전을 한 구단으로 안양과는 별개의 구단이라는 인식 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그리고 결국 이 두 팀의 경기가 지금과 같은 슈퍼매치가 된 것입니다.(이런 이유 때문에 한 편에서는 이 경기를 언론이 만들어낸 비꼬는 의미에서 언론더비라고들 합니다.)



지지대더비에서 보여주었던 수원 서포터의 카드섹션 '격파안양'

이외에도 나드손의 극적인 두골 몰아치기로 승리한 경기 등 
지지대더비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으나, 2004년 안양의 서울 연고이전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격파안양')


  어쨌든 굳이 조금 길게 슈퍼매치’ 이야기를 꺼낸 것은 2004년 이전에 있었던 지지대 더비'에 불을 붙인 서정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1995년 삼성이 수원을 연고지로 프로축구단을 만들 당시만 해도 안양과는 딱히 라이벌 감정이랄 것이 없었습니다실제 수원이 리그에 참가한 96년부터 98년까지 두 팀의 전적은 안양 기준 1승 6무 7패로 수원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죠하지만 1999년 시즌을 앞두고 양 팀의 관계는 급격하게 냉각됩니다. 92년부터 97년까지 안양에서 활약했던 서정원이 프랑스 생활을 마무리하고 K리그로 복귀하면서 안양이 아닌 수원을 택했던 것이죠이에 더해 수원의 코치였던 조광래 감독이 김호 당시 수원 감독과의 마찰로 팀을 떠나 안양으로 가면서 두 팀 사이는 순식간에 벌어집니다급기야 99년 3월 20수원과 안양이 맞붙은 수퍼컵 경기에서 안양 서포터들이 서정원의 유니폼을 입은 인형을 태우는 이른바 서정원 화형식이 벌어지면서 지지대 더비가 치열하게 시작됩니다.(실제 99년 이후 양 팀의 상대 전적은 10승 4무 10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2004년 이전 K리그의 명품 경기였던 지지대 더비를 이루는 필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서정원이었죠.(하지만 서정원 선수 본인은 자신이 지지대 더비의 원인이다라고 보도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 아픈 구석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1970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서정원은 다른 선수들처럼 일찍 축구를 시작한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중학교 때 축구선수였던 그의 형을 따라 축구를 시작한 것이 그를 축구선수의 길로 이끌었죠비록 늦게 시작한 축구였지만 고등학생 때 이미 그는 최고의 고교 축구선수로 성장합니다. 1986년 전국고교축구선수권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당시 거제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두 차례의 해트트릭을 포함하여 총 11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는 동시에 거제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죠이후 고려대에 진학한 서정원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고 대학 축구계에서도 손꼽히는 선수가 되면서 급기야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엔트리에 발탁되기에 이릅니다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괜찮은 성적과 지역예선에서의 성적으로 다크호스로 뽑히고 있었죠하지만 세계축구와 한국축구의 수준 차이는 여전했고 서정원은 예선 3경기를 모두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서정원(앞줄 맨 오른쪽)
이 대표팀을 이끌었던 것은 독일 출신의 크라머 감독이었으나 
국내 스태프와의 갈등으로 정작 본선무대에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1992서정원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대비한 축구 대표팀에 소집됩니다바르셀로나 올림픽은 현재와 같은 23세 이하 출전이라는 나이 제한이 도입된 첫 대회였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69년 7월 1일 이후 출생한 선수들만이 대표로 뛸 수 있었고따라서 서정원을 비롯해 당시 대한민국 축구의 젊은 유망주들이었던 노정윤강철신태용정재권이임생 등이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하게 됩니다대한축구협회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하고 24년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데이 감독이 서정원이 아직도 존경하는 지도자인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입니다크라머 감독은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의 기술고문으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동시에 1975년부터 77년까지 독일의 명문팀인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명장이었죠이러한 감독의 지휘 아래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은 28년만의 올림픽 자력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크라머 감독은 김삼락 감독을 비롯한 국내 스태프들과의 갈등으로 한국이 왜 날 불렀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대표팀을 떠나고 맙니다결국 올림픽 대표팀은 김삼락 감독 체제로 바르셀로나 본선 무대를 밟게 되고 3무라는 괜찮은 성적을 올리지만 예선에서 탈락하죠. 2007년의 인터뷰에서 서정원은 크라머 감독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올림픽 본선에서 3무로 탈락한 게 많이 아쉬웠고경기 내용도 좋았고경기 자체를 다 잘 치러냈기에 크라머 감독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 서정원은 크라머 감독과의 만남을 신선한 충격이라고 표현했다지도 방식훈련 스타일 등 모든 게 국내 지도자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서정원은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들이 가진 것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연습경기를 가진 다음 날 미팅에서 크라머 감독이 그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연습경기에서 수차례 맞은 찬스를 골로 연결하지 못했던 서정원은 무슨 망신을 주려고 그러나하면서 미적거리며 일어섰다그런데 크라머 감독은 뜻밖에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라면서 그를 칭찬했다. “한번 시도해서 안되면 또 시도하고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강한 정신력을 발휘했다앞으로 정말 많은 골을 넣은 선수라는 이유였다당시만 해도 한국 축구는 칭찬보다는 억압과 강요가 더 많았다

 

엄청 아쉬움이 남았죠. 3무에서 떨어졌는데 올라 갈수도 있었어요승점 3점으로 떨어졌거든요그때 떨어지고 선수들도 많이 아쉬워했어요또 3경기 다 게임도 잘 했거든요잘했는데도 떨어진게 너무 화가 나는 거죠그 때 생각을 했어요끝나고 나서 선수들이 모여서 밥 먹다가도 야 크라머 감독이 계속 있으면 지금 진짜 무슨 일이 터졌긴 터졌을텐데...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던 기억이 많이 나죠그때

 

  서정원이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은 것이 바로 올림픽 예선 최종전이었던 스웨덴 전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이미 크라머 감독을 통해 여러차례 레버쿠젠브레멘과 같은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던 서정원이었지만 군대 문제와 더불어 그를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했던 안양LG의 러브콜 안양은 이 시기 서정원을 영입하기 위해서 일부러 리그 경기를 지는 일까지 했었습니다. - 에 드래프트를 신청안양과 계약을 하게 됩니다힘겨운 노력 끝에 영입한 서정원을 안양이 놓아줄 일은 없었고결국 서정원은 유럽으로 가지 못하고 안양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서정원이라는 이름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던 94년 미국 월드컵.
사진은 서정원이 스페인전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은 스페인전에서 극적으로 무승부를 거두는 등 2무 1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목표였던 16강 진출에는 실패하죠.
(이미지 출처 : 대한축구협회)

  사실 서정원을 많은 축구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은 94년 미국 월드컵이었습니다당시 도하의 기적을 통해 힘겹게 본선 무대에 올라간 대한민국 대표팀은 90년 월드컵 우승팀인 독일과 강호 스페인그리고 볼리비아와 한 조에 편성되었고 많은 언론들은 대한민국을 조 최하위로 판단하고 있었죠일례로 당시 대한민국과의 조별예선 첫 경기를 앞두고 있던 스페인의 감독은 5-0으로 이겨주겠다고 할 만큼 대한민국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습니다하지만 정작 경기가 시작하자 스페인의 수비수 나달이 퇴장당하면서 경기는 대한민국에게 우세하게 진행되었죠후반전에 들어서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역습에 두 골을 허용하며 2-0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이에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김호 감독은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게 되었고이를 위해 홍명보를 중앙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빠른 스피드를 보유한 서정원을 교체 투입하는 승부스를 띄웠죠후반 39홍명보의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한 점을 따라붙은 대한민국의 짜릿한 드라마를 완성시킨 것은 교체 투입된 서정원이었습니다서정원은 홍명보의 패스를 이어받아 통렬한 동점슛을 성공시켰죠이후 서정원은 볼리비아와의 예선 2차전에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득점에는 실패하고 대한민국 대표팀도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독일과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상단 이미지) 안양시절, 당시 전남 소속이던 김태영과 볼경합을 하고 있는 서정원.
(하단 이미지) 98 월드컵 예선, 도쿄대첩에서 동점골을 쏘아올리고 환호하는 서정원의 모습

(이미지 출처 : 대한축구협회)


  94 미국 월드컵 이후 상무에서 제대하고 1996, 1997시즌 동안 44경기 15골 6도움을 기록, 1997년에는 지금의 컵대회라고 할 수 있는 아디다스 컵대회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치던 서정원에게 또다시 해외진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포르투갈의 벤피카에서 서정원에게 계약제의를 한 것이었죠실제 벤피카와는 계약의 세부사항까지 협의가 다 된 상태였으며 9번이라는 등번호가 달린 유니폼까지 나온 상태였습니다하지만 서정원은 해외진출은 또다시 쓴 잔을 마시고 말았습니다대한축구협회에서 이적동의서를 써주지 않았던 것이죠당시 리그 성적이 좋지 않던 벤피카는 서정원에게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뛰지 않기를 요청했습니다서정원의 생각으로는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력으로 충분히 최종예선전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한축구협회에 문의했으나예상 외로 협회로부터 온 답이 안된다였죠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차범근 감독이 핵심멤버인 그를 최종예선전에 기용해야한다고 했던 것입니다일본의 급성장과 전력이 베일에 가려져있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옛 소련 팀들과 맞붙어야했던 차범근 감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서정원에게는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어떻게 보면 이 해외진출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는 이른바 도쿄대첩이 쓰인 것이지만요새 선수의 해외 진출설이 떠오르기만 해도 보내주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당시 서정원의 해외 진출이 무산된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입니다. 2009년에 홍명보를 만난 포르투갈과 벤피카의 전설인 에우제비오가 서정원의 안부를 물었다는 일화만 봐도 서정원의 벤피카 입단 무산은 축구팬의 입장에서도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죠.

 

1997년 12서정원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해외진출에 성공합니다프랑스 리그 1의 RC스트라스부르가 이적료 110만 달러에 그를 영입한 것이죠데뷔전에서부터 골을 넣으며 활약을 예고한 서정원은 이후에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면서 강등권에 쳐져있던 스트라스부르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됩니다프랑스에 이른바 쎄오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죠당시 스트라스부르의 연간회원권에는 서정원의 얼굴이 박혀있었고 스트라스부르 시내의 대형 간판에도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심지어 프랑스 외국인 올스타에도 서정원이 선정됐을 정도였죠프랑스에서 이와 같은 서정원의 인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뛸 때 교민 아주머니가 눈믈을 흘리며 저를 반기던 때입니다당시 한인회 초청으로 식사자리에 갔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같이 와서 고맙다며 저를 붙잡고 울더라구요…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프랑스 친구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코레라고 하면 어딘지 몰라 시나시나(중국)’라면서 놀렸답니다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와서 매일 울었는데 제가 스트라스부르에서 뛰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그때 제가 정말 잘했거든요시내 광고판에 제 사진이 붙고 구단에서도 팀 홍보를 할 때 저를 앞장세우곤 했으니까요그 이후 유치원에 가서 쎄오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까 더 이상 놀리지 않더랍니다… 



스트라스부르 시절의 서정원. 

당시 스트라스부르의 연간권에는 서정원이 새겨져 있었고, 

시내의 대형 간판에도 그의 얼굴이 들어간 광고판이 있었습니다.

그정도로 프랑스 무대에서 서정원의 활약은 대단했죠.

(이미지 출처 : racingstub.com)

 

98년 프랑스 월드컵국민들이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거는 기대는 굉장히 컸습니다지역예선에서의 압도적인 성적그리고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독일 등 축구 강호들과 맞붙어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펼쳤다는 점 등은 그러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죠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서정원에게 갖는 기대감은 더 특별했습니다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서정원이 유일했기 때문이었죠또한 프랑스에서의 훌륭한 데뷔시즌으로 인해 서정원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관심을 갖는 선수였습니다하지만 서정원은 월드컵 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대표팀의 조별 예선 탈락과 차범근 감독의 경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대회 직전 아들에게서 옮은 수두로 인해 컨디션을 조절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죠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원은 이동국과 더불어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뽑은네덜란드 전에서 인상적이었던 한국 선수가 되었습니다.(당시 히딩크 감독이 뽑았던 인상적인 선수 두 명이 2002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모두 탈락한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월드컵이었지만스트라스부르에서 서정원의 위치는 확고했습니다데뷔시즌 27번을 달고 뛰었던 서정원은 98-99시즌을 앞두고 평소에 달던 11번을 달게 되었고 그것은 그만큼 팀에 그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스트라스부르의 감독과 단장이 바뀌면서 서정원의 프랑스 생활은 막을 내리고 맙니다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만코프스키 감독은 기존의 베스트 11 중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데려온 9명의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서정원은 주전 자리와 멀어지게 되죠하지만 스트라스부르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스트라스부르의 서포터들은 서정원의 출전을 요구하게 됩니다마침내 네 달 만에 출전한 경기에서 종료직전 팀을 구하는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서정원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하죠하지만 감독과의 냉랭한 관계는 계속되었고급기야 구단에서는 서정원에게 스위스 구단으로의 임대를 제의합니다하지만 서정원은 임대를 원치 않았고 경기를 뛰지 못하는 날들이 점점 길어지게 되었죠결국 팀을 떠나기로 결심한 서정원은 발렌시아메츠와 같은 팀에서도 제의를 받았으나 결국 1년 후 해외진출을 약속한 수원을 통해 국내복귀를 하게 됩니다. 2002년에 있었던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와의 인터뷰에서 서정원은 이 당시 자신의 전담 매니저가 없었던 점그리고 선수의 기량 등의 이유가 아니라 스태프들과의 불화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 유럽에서 떠났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고 밝혔습니다.


  수원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서정원은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기존의 친정팀이던 안양이 원래 서정원을 해외로 이적시키면서 다시 K리그로 복귀할 경우 안양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이적료의 절반을 지불했다고 하면서 수원으로 복귀했으니 그 받았던 이적료를 내놓으라는 소송을 걸었던 것이죠이러한 소송 제기와 당시 조광래 수원 코치의 안양 감독 취임여기에 삼성과 LG라는 재계 라이벌 의식까지 더해지면서 처음에 언급했던 지지대 더비가 형성됩니다. 2004년 안양이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하면서 지지대 더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그전까지 두 팀은 호각지세를 이루면서 많은 K리그 팬들을 열광시켰죠.

 



서정원은 2003년, 빅버드에서 있었던 지지대더비에서 

환상적인 오버헤드 킥을 선보이며 수원을 승리로 이끕니다.


  수원을 통해 K리그로 다시 돌아온 서정원은 리그 27경기 11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시즌 종료 후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자신의 기량이 여전함을 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소속 팀이었던 수원 역시 서정원을 비롯하여 샤샤박건하데니스김진우 등을 앞세워 FA컵을 제외한 나머지 우승컵을 모두 싹쓸이하면서 창단한지 5년 만에 한 시즌 4관왕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죠하지만 이러한 99시즌에 서정원은 전남과의 홈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고이후 재활과정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커다란 부상을 당하고 만다이로 인해 수원으로 국내 복귀하여 1년 간 활약하고 다시 해외진출을 하려던 서정원의 계획은 안타깝게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또한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하고 나선 00시즌에 서정원은 25경기에서 4골 1도움이라는. ‘서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성적으로 이제 서정원도 선수 생명이 끝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한물갔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듣게 됩니다.

  


K리그 뿐 아니라 아시아 무대를 휩쓸었던 99 시즌의 수원 블루윙즈.

이 시기의 수원은 K리그의 30년 역사를 통틀어 역대 최강의 팀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홈 경기 20경기 무패, 13경기 연승, 23경기 연속 득점 등이 이 때 수원이 세운 기록이었죠.

수원은 99년 이후에는 아시아 무대에 도전하여 아시안 클럽컵과 슈퍼컵을 제패합니다.

(하단 이미지 출처 : 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01시즌수원이 아시아 정복에 나선 이 시즌에 서정원은 아시안 클럽컵(現 AFC 챔피언스리그)과 아시아 슈퍼컵 우승을 이끌며 완벽히 부활합니다특히 아시안 슈퍼컵에서 서정원은 두 골을 몰아치며 MVP에 선정되었고 K리그에서도 33경기 11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99년에 이어 또다시 베스트 11에 뽑히게 되었죠. 2001년에 서정원이 수상한 개인 타이틀은 총 4개로 앞서 언급한 아시아 슈퍼컵MVP를 비롯, AFC선정 8월의 선수, 01시즌 K리그 베스트11, 그리고 K리그 MVP까지 수상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정원은 히딩크가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하고 말았죠월드컵이 끝나고 있었던 인터뷰에서 서정원은 대표팀 탈락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후배들이 4강까지 간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 … 홍명보 선수나 황선홍 선수들은 저하고는 셋이 쭉 같이 해왔던 멤버들인데같이 못한 것이 참 아쉬웠고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됨에도 같이 참가를 못하는 것이 상당히 아쉬웠어요.… 솔직히 아쉬움도 컸는데 가장 큰 원인인 이 무릎부상을 안 당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무릎부상 당하고 나서 안 좋을 때 들어가서 계속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나를 많이 못 보여주고 그랬다라는 게 아쉬웠어요.처음에는 운동선수로서 아진짜 저기에 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월드컵에 1승하고 그랬을 때는 그런 생각이 먼저 들고 그랬었는데나중에 자꾸 올라가면서 어~정말 대단하구나축구 선수로써 정말 자부심도 생기고 그리고우리 후배들이 열심히 뛰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진짜로 들더라구요.”

 

  02시즌수원의 주장을 맡아 32경기 9골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준 서정원은 또다시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동시에 02시즌 수원의 유이한 우승컵 또 다른 하나는 아시안 클럽컵이었습니다. - 이었던 FA컵에서도 MVP에 선정되면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02시즌이 끝나고 수원으로부터 플레잉코치 역할을 제의받은 서정원은 아직 더 뛸 수 있다며 플레잉코치 직을 거절합니다이때의 플레잉코치 제의와 관련하여 이후에 여러 인터뷰에서 질문을 했으나 서정원의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30대 선수는 노장이다한물 간 선수다’, 그리고 빠른 선수는 금방 은퇴한다.’라는 편견과 속설을 깨고 싶었다는 것입니다서정원은 술담배는 물론탄산음료와 커피까지 먹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데그것도 모두 오랜 선수 생활을 위한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이듬해인 03시즌서정원은 무려 43경기를 뛰면서 자신이 아직 플레잉코치보다는 선수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하죠뿐만 아니라 10득점 5도움이라는 성적까지 곁들이면서 다시 한 번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K리그 통산 43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합니다이러한 서정원의 활약은 당시 수원의 촉망받는 윙어였던 이종민이 1군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2군 경기에 나서거나 교체를 통해 1군 무대에 나설 정도였죠하지만 이러한 서정원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수원은 공격을 이끌던 고데로 트리오(고종수-데니스-산드로)’의 해체와 유망주였던 정용훈의 사망 등 여러 악재들로 서정원의 입단 이후 처음으로 무관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04시즌은 수원에게 새로운 한 해였습니다. 03년도까지 팀을 이끌며 10여개가 넘는 우승컵을 가져다 준 김호 감독이 수원을 떠나고 98 프랑스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차범근 감독이 새로운 수원의 감독으로 선임된 것이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원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서정원은 김두현김동현조재진곽희주 등의 젊은 선수들을 이끄는 노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그 결과는 1999년 이후 5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이었습니다비록 이 해의 성적은 25경기 1골 3도움으로 지난 시즌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수원 우승의 원동력 중 하나로 서정원과 같은 노장 선수들의 역할을 손꼽았었죠




04시즌, 수원은 새로운 감독인 차범근의 휘하에서 3번째 K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포항과 수원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수원의 골키퍼 이운재가 포항의 골키퍼 김병지의 킥을 막아내면서 우승을 차지했죠.

04 시즌이 끝나고 서정원은 오스트리아로 건너갑니다.

(이미지 출처 : gamper.egloos.com)



  05시즌을 앞두고 서정원은 수원에서의 생활을 마감오스트리아로 건너가 SV잘츠부르크에서 플레잉코치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처음에는 선수 생활을 유럽에서 조용히 마감하고 동시에 유럽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려는 것이 서정원의 계획이었지만 서정원의 재능은 그를 벤치가 아닌 필드에서 계속 활약을 이어가게 만듭니다잘츠부르크에서 12경기 2골을 기록하며 만 35살이라는 나이를 거스르는 활약을 한 서정원에게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승격한 SV리트에서 플레잉코치직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죠본래 오스트리아에 6개월에서 1년만을 계획으로 온 서정원에게는 다소 예상에 없던 제안이었지만 SV리트 측의 적극적인 구애에 결국 SV리트에서 뛰게 됩니다.

 

05-06시즌 오스트리아 리그 전반기 22경기 출장 7그리고 2005년 일간지 <쿠리어>가 뽑은 올해의 축구 선수와 최우수 측면 공격수스포츠 주간지 <스포르트보헤>가 뽑은 전반기 평점 1(7.14)…….


  위에 열거한 골 기록과 타이틀들은 서정원이 05-06시즌 SV리트에서 뛰면서 기록하거나 받은 것들입니다3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서정원은 오스트리아에서 제 2의 쎄오열풍을 일으킨 것이죠이 시기의 활약은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베테랑 선수의 부재로 골머리를 앓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서정원을 발탁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안타깝게도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를 발탁하지는 않았지만 선수로서 황혼기에 들어선 나이 그와 함께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뛰었던 동기들은 다 은퇴한 상태였습니다 에 이러한 활약을 보인 서정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그의 활약은 05-06시즌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죠다음 시즌서정원은 SV리트와 함께 인터토.토컵에 나가 팀의 우승에 일조하는 동시에 팀 역사상 최초로 UEFA컵 진출이라는 기록을 남깁니다정규리그에서도 계속 활약을 이어가며 05-06 시즌에 1부리그로 승격한 SV리트를 4위로 끌어올렸으며 이를 통해 <스포르트보헤>가 뽑은 올해의 축구 선수에 2년 연속 선정되기에 이릅니다서정원은 이와 같은 오스트리아에서의 생활에 대해 은퇴 직후 풋볼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오스트리아로 건너간 서정원은 만 36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당시 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에 발탁해야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죠.

SV리트에서 서정원은 팀을 인터토.토컵에서 우승시키면서 UEFA컵에도 진출시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오스트리아에서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처음에는 6개월 정도만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런데 생각보다 몸 상태가 너무 좋아 선수 생활을 계속 했고 운도 따라서 그런 상도 받을 수 있었다리트의 동네 사람들은 한국인만 보면 내 얘기부터 꺼낸다역에서 내려 우리 집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이 알아서 우리 집까지 안내해 줄 정도다.”

 

  그리고 2007년 7서정원은 만 37세의 나이로 마침내 은퇴를 선언합니다그리고 그해 8월 22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지며 공식적으로 은퇴하게 되었죠그렇게 25년간의 선수 인생을 뒤로하고 서정원은 유럽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다가 2009년 선수 시절 좋은 호흡을 자랑하던 홍명보 감독이 대한민국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을 맡게 되면서 신의손김태영과 함께 코치로 임명됩니다그리고 홍명보 감독과 함께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 8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고 이후 홍명보 감독이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자 그대로 올림픽 대표팀 코치가 되면서 지도자 인생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습니다또한 2010차범근 전 수원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임하자 차기 수원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언급되면서 은퇴 이후 또 다시 주목받기도 했었죠. 이후 서정원은 조광래 감독이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 감독에 부임함에 따라 A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이동으로 인해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조광래 A대표팀 감독 사이에서는 왜 코칭스태프를 빼가느냐는 식의 논란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12월 19일 조광래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코치였던 서정원 역시 같이 물러났고, 이후 그가 뛰었던 빅버드에 수석코치 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스피드를 살린 날카로운 공격으로 날쌘돌이라고 불렸던 서정원저는 앞으로도 그가 영원히 날쌘돌이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가 뽑았던 이상적인 감독인 크라머와 같은 명감독이 되어 언젠가 그가 뛰었던 빅버드에 서기를 바랍니다수원에서 서정원을 위해 불렸던 응원가 가사로 Fever Pitch의 다섯 번째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Seo! Oh My Hero! 영원하라수원의 푸른 별~!

  

참고자료

위키백과(ko.wikipedia.org) ‘서정원’ 항목

위키백과 ‘K리그 1999’항목

위키백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항목

영문 위키피디아(en.wikipedia.com) 'Dettmar Cramer' 항목

그랑블루수원FC 지지자 연대 그랑블루 세 번째 써포터 인터뷰. No.14. 날쌘돌이 서정원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bangton/20026421258 '서정원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ajax14jeon/50000963722 '서정원한국축구의 영원한 날쌘돌이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eplknights/110018666663 '비두카피구서정원으로 살펴본 배신의 역사 유다 신드롬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jupark88/150001304903 '[그리운 지지대(遲遲臺더비

이데일리 SPN 인터뷰 서정원와 딥 토크 ’ 1-4

풋볼위클리 33호 ‘Seo, So long...서정원

사커라인 www.soccerline.co.kr 칼럼게시판 메씨도나 님 오늘 별일 없어케이리그 보러가자!’




앞부분 연고이전부분에서 팩트 틀린건 댓글로 달아줘

이거 쓴게 작년 서정원 수코 부임하기 전인데...솔직히 이렇게 빨리 감독될거라곤 생각도 못했음.


p.s 중간 인터토.토 컵에 점찍은건 토.토가 금지단어라...글이 안올라감ㅋㅋ

Who's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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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o vas a saber lo que es el amor si nunca te hiciste hinchas de un club.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이지 어떻게 알겠니.

  • ?
    Goal로가는靑春 2013.03.25 11:28
    슈퍼매치(어우 역겨워)를 지지대더비의 연장선으로 보는것 자체가 틀린 논리
  • ?
    title: 강원FC_구roadcat 2013.03.25 11:56
    본격_안양빠들하고_싸우자는_글.txt
  • profile
    title: 2014 안양 42번(정재용-주문제작)이갈릭 2013.03.25 12:41
    이 인간에 대해 설명하기위해 이토록 긴 타이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찢어죽여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 육두문자 포함된 욕설 정도면 충분.
  • profile
    title: 인천 유나이티드_구Gunmania 2013.03.25 12:49
    장문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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