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에 대한 책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매년 초에 나오고 연말이 되기 전에 자취를 감추는 연감들처럼 시의성이 강한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신선함이 증발 되어버린다. 필자 역시 한 사람의 축구팬이며, 매달 많은 양의 책을 구입한다고 자부하지만, 축구에 관한 책들을 산 기억은 별로 없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고,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책 속의 내용들이 식상해져서 이 책들을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가지고 있을 법한 스포츠 도서를 만들고 싶다면, 리처드 줄리아노티의 [축구의 사회학]처럼, 단순한 종목 그 자체를 넘어서 축구를 통한 새로운 삶의 통찰, 혹은 전문적인 지식 정도는 제시해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프로스포츠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스토리를 재구성한 ‘논픽션’ 도서가 나온다면 다양한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점에는 한철 판매되다가 자취를 감출 스포츠 도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매대 앞에 서서 하나하나 훑어보고는 ‘이 책들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긴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책이고, 마니아들에게는 별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찬 책들일 뿐이다. 축구도서들 중 가장 눈에 들어온 책은 배진경 기자의 [K리그 레전드]이다. K리그에 관련된 다른 책들과 [K리그 레전드]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인터넷 매체와 책 사이에서 방황하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K리그 레전드]는 책이라는 매체에 잘 맞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로축구 30년을 수놓았던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내용으로 꼼꼼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책은 프로축구 ‘레전드’들을 통해서 프로축구 30년 역사를 짚어주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응원하는 팀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싶다면, [K리그 레전드]가 현재로썬 제일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 책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K리그 레전드’를 선정하는 것이 전적으로 필자에게 달려있는 탓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리스트가 나왔다고 보긴 어렵다. 한 축구팬의 지적대로, “상당수의 선수들이 포항과 관련이 있는” 선수들이고 저자인 배진경 기자 본인이 포항 스틸러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객관성에 대해선 다소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다. 물론 포항 스틸러스가 프로축구의 시작부터 존재해왔던 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선 후속작을 통해서 보충해주길 부탁한다. 선수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구성 또한 자칫하면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안겨줄 수도 있다. 중간중간 구성의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땠을까? 파리아스 감독에 대한 꼭지 맨 마지막의 박스 자료와 같은 내용들을 좀 더 준비해주었다면 더 좋은 책을 만들었을 것 같다.
끝으로 책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지적을 하고자 한다. 이것은 저자의 문제가 아닌 출판사의 문제이다. 책 표지 자체는 그냥 특별히 튀지도 않고 허술하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축구에 관련된 다른 책들이 촌스러움의 극한을 달리는 디자인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참 예쁜 책이다. 본문도 다른 책들에 비하면 아주 읽기 편한 무난한 구성을 택하고 있다. 도비라 디자인은 좀 별로였고, 맨 마지막 페이지는 충격적이었다. 실수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책들에는 다 있는 한 두 페이지가 없을 뿐인데 책이 중간에 끊긴 느낌이 든다.(실제로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파본인줄 알았다.) 간단한 부록이나 여백 페이지라도 넣어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필자가 무엇을 지적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 아무 책이나 하나 꺼내서 마지막 페이지를 비교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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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냉정하게 쓰려고 노력했음.
서점에도 따로 올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