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제 경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았을 꺼라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지난 1달동안 개발공에 올라오는 지지팀에 대한 성토를 보면 감독, 프론트, 선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많이 보였죠. 저도 2013시즌과 2012시즌을 비롯해서 팀에 불만이 큰 시즌을 꼽아보라면 제법 많이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거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팀에 불만이 생길 때는 감독과 프론트, 선수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모기업이 만들어내는 큰 그림에 휘둘릴 때가 많다는 겁니다.
수원 삼성이라는 팀의 역사를 잘 생각해보면 모기업인 삼성이 소위 1등주의라는 기치를 세우고, 이를 삼성 스포츠단에서도 적용함으로써 자랑스런 역사를 써 내려갔죠. 이는 수원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똑같습니다. 야구(우승 8회), 농구(남자부 2회, 여성부 5회), 배구(8회) 등 타 종목을 봐도 그룹 최상위 경영진의 의사에 따라 그에 걸맞는 지원은 물론이고 방향성까지 명확히 제시한 가운데 성적을 냈습니다. 방향성이랄게 뭐 있겠습니까? 잘 알다시피 power overwhelming이죠. 문자 그대로 타 팀과 비교해서 삼성이 갖고 있는 우위요소는 모기업의 충분한 자금을 스포츠단에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각 종목에서 타 팀의 도전을 물리치고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며 성과를 내라는 겁니다. 지금의 전북이 비슷합니다. 다른 팀들이 투자를 축소할 때 ACL 우승을 기점으로 되려 투자를 늘려가며 현재의 전북을 만든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1등주의 흐름을 스포츠단에도 주입했던 이건희는 지금 경영에서 사실상 손을 땐 것은 물론이고, 외부적으로는 8~90년대 초중반의 경제상황에 비해 2010년대는 암울함 그 자체죠. 그래도 경영진이 스포츠단에 대한 투자를 할 의지라도 있으면 다행이죠. 어차피 산업군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현재 경제상황에서 삼성만 어려운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삼성 경영진이 택한 건 각자도생입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삼성 스포츠단은 제일기획이 관리하는 걸로 하나로 묶은것은 물론이고, 자금지원도 예전에 비해 꾸준히 줄고 있죠. 이 말은 기존의 삼성이 가지고 있던 가장 강력한 우위, 즉 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만한 여유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지금 개리그 팬들은 전북이 모기업 현대자동차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300억 정도 쓰는걸 우와~ 하고 있겠지만, 과거 수원은 삼성그룹으로부터 이보다 100억 정도 더 많이 받아 썼었다는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과 10년도 채 안 된 이야기에요. 모든 기업이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축소했다손 치더라도 삼성은 분명 가장 많은 지원을 하고 있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 같이 10% 줄였다 쳐도 수원이 최고로 많이 투자받는 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결과는 전북이 지금 리그에서 최고로 투자를 많이 받는 팀이 되었습니다.
또 경영진이 아예 팀을 없애버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도 팀 분위기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몰고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는 비단 수원 삼성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전 봅니다. 우리 팀에 불만이 많았던 12, 13시즌의 경우도 문선명이 오늘 내일 하는 과정에서 일화의 재정지원은 물론이고, 팀의 운명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까지 치닫자 선수들도 사기가 떨어진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지금 전남은 어떤가요? 전남이라고 뭐 다릅니까? 풍문으론 이사진이 스포츠 팀을 두개 운영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걸 여기에서 본 거 같은데요. 포항도 사실 딱히 다르지 않잖아요. 황감독 떠난 이유중 하나가 모기업의 태도였다면서요. 이렇듯 경영진이 만드는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큰 악영향을 미칩니다.
제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봐도 ㅅㅂ 정리대상 명단 나온다는 이야기만 돌아도 분위기가 아주 최악이 되었는데 이에 준하는 팀 매각이야기까지 나왔다면 솔까 수블 프론트는 물론이고 선수단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안 봐도 뻔해요. 통장에 해고수당 명목으로 돈이 들어온거 확인해 본 분 계시면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말 안해도 아실꺼라 생각됩니다. 차라리 해고수당이 들어오면 체념이라도 들고 아싸리 마음이라도 편해지지, 내가 대상일까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안고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들 노래에 그거 있죠? 꿈에서라도 너와 함께한다고요. ㅅㅂ 근데 이런 분위기면 꿈에서라도 따라오는게 청백적의 챔피언이 아니라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됩니다. 꿈도 내 것같지 않아요.
일단 비판의 관점을 갖는다는 건 좋지만 타 팀의 입장에서 볼때, 그리고 팀이 사라지는 경험을 겪을 뻔했던 팬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감독과 현장에서 뛰는 프론트, 선수들이 가장 먼저 비판받기 이전에 이딴 개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 삼성그룹 임원진부터 그 비판의 시작과 끝이 되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 주지도 않았고, 그 불안함만을 안겨준 채 그라운드를 뛰어야 하는 선수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솔까 이런 행동이 우롱하는 걸로밖에 안 보입니다.
+추가
현재 삼성 스포츠단의 상황을 보면 딱히 이건 수블만의 문제는 분명 아닐꺼라 생각됩니다. 야구도, 배구도, 농구도 죄다 모기업의 태도 때문에 추가적인 외부불안요인 하나만 들이닥쳐도 바로 팀이 와해될 수 있는 상황까지 왔고, 여기엔 수블도 예외가 아니라는 확신마저 듭니다. 이미 삼성 스포츠단 중에서 아마추어 종목은 몇개가 작년에 해산되었던 걸 생각하면 다음은 나라는 생각이 스포츠단 전체에 드리운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