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여름에 힘 빠지는 제주의 16번째 적, 원정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제주 유나이티드는 K리그 16개 팀 중 유일하게 섬을 연고지로 삼고 있다. 육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항공편을 필수적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제주 입장에선 매 경기 원정이 타팀에 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대한민국 어디나 1시간 내외면 닿을 수 있는 것이 항공편이라 선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제주의 사정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내용은 완전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세,네 시간이 소요되는 제주로서는 원정 자체가 K리그에서 상대하는 15개 팀과는 별도로 존재해는 16번째 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는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원정 일정이 집중되고 체력 소모가 큰 여름에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박지성이 잦은 비행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끝내 대표팀 은퇴를 선택한 것과 배경이 일맥상통한다. 풋볼리스트가 제주의 원정길을 동행 취재해봤다.
7시 20분, 제주클럽하우스 2층에 있는 식당에서는 아침 뉴스와 함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식사 중이다.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은 죽, 샐러드, 누룽지 위주의 식단이 구성돼 있다. 원정에 참가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함께 참석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식사를 마치고 선수들은 각자의 짐을 챙겨 7시 50분까지 선수단 버스에 올라타야 한다. 제주 선수들은 일괄적으로 단복을 맞춰 입은 모습이다. 일체감을 갖고 긴 이동 시간 동안 마주할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다. 초창기에는 정장을 입고 다녔지만 여러 불편사항이 확인됐다. 결국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참가를 계기로는 보다 산뜻한 캐주얼 복장으로 변경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의상은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 구분이 된다. 선수단 버스에는 총 29명이 탑승한다. 그 외에도 미니밴이 준비되는데 여기에는 권혁수 전력 분석관이 타고, 버스에 차마 싣지 못한 짐들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한다.
클럽하우스를 출발한 버스는 50여분을 달려 8시40분 경 제주공항에 도착한다. 출국장 입구에 버스가 멈추자 배일환, 오반석, 한용수 등 막내뻘 선수들은 짐도 챙기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가기 바쁘다. 공항에서 짐을 운반할 카트를 한 가득 챙겨서 밀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는다. 자신의 짐은 자기가 챙기는 것이 원칙. 후배들은 카트를 여러대 밀고 올 뿐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여행사 직원이 선수들을 기다린다. 다른 구단의 경우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전체 원정 일정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에 구단이 직접 예약하지만 제주는 다르다. 모든 원정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권 구매를 위한 대행사 계약을 해 여행사가 일괄 구매한다.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항공권을 넘겨받은 뒤 인원체크를 하며 개별로 나눠주는 것도 막내뻘인 배일환의 몫이다. 그는 “(한)동진이 형 어디 있는 거예요?”라며 화장실을 가거나 커피 한잔 하러 간 동료들을 찾아 나선다. 선수단 버스를 이용한 전체 이동이 원칙이지만 서귀포시가 아닌 제주시에 사는 유부남 선수들의 경우는 곧바로 공항에 오도록 배려해준다. 오승범이 공항에 가장 늦게 나타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장원석은 올 여름 인천에서 제주로 이적하며 뭍에서 건너 온 가장 싱싱한(?) 선수다. 제주의 잦은 원정 이동이 가장 낯설고, 그 불편함을 가장 실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인천 시절엔 전주 정도까지의 지역은 버스나 KTX를 이용했다. 시간으로 2시간 내외 거리다. 그 이남으로 갈 때만 항공편을 이용했는데 제주에선 늘 항공편을 타야 한다. 항공편이 빨리 갈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의외로 오래 걸리고 대기 시간도 필요하다. 오늘 같은 경우는 빨리 통과해서 출발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엔 국내선인데도 공항에서 한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컨디션 유지나 몸 상태에도 미묘한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휴가 때도 집으로 가기 위해선 항공편 이용이 필수. 경기도 안양이 집인 장원석은 제주 입단 후 첫 휴가 때가 하필 성수기여서 항공권 구입에 애를 먹기도 했다고. 동료 선수들로부터 항공권 구입에 대한 팁을 얻었는데 휴가 일정이 불안정한 선수들 입장에선 첫 번째로 가장 즉각적으로 탈 수 있는 시간대의 항공편을 선택하고, 복수의 선택이 가능하다면 최근 활성화돼 있는 저가항공을 고려한 요금 순으로 선택한다. 제주 구단은 원정 경기나 공식 행사 등을 위해 선수단을 이동시킬 때 저가항공을 이용하지 않는다.
선수단이 비행기 탑승을 완료한 시간은 9시 20분. 선수단 중 유일하게 박경훈 감독만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다. 비행기에 오를 때면 박경훈 감독은 늘 스포츠일간지를 집는 버릇이 있다. 이동 중 하늘 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경훈 감독은 원정으로 인해 겪는 제주의 어려움을 거듭 설명했다. “남들이 들으면 핑계 같지만 우리 입장에선 절대 핑계가 아니다. 특히 여름이 되면 제주는 늘 힘들다. 작년에도, 올해도 전반기에 좋은 경기를 하다가 7월이면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 체력이 고갈되는 시기에 원정 이동이라는 적을 추가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한 경기를 치르는 것 같은 어려움이다. 특히 올해처럼 여름철에 주 2회 경기를 하는 일정은 정말 힘들다. 대한민국 하늘과 땅 위로 엄청나게 돌아다녔다. 게다가 올 여름에 원정 경기가 집중돼 있어 선수들이 제주로 돌아올 때면 초주검이 된다. 원정을 다녀오고 이틀 뒤 홈 경기를 치르는데 우리 스스로가 적응이 안될 정도다. 결국 홈 성적까지 나빠지는 사면초가에 몰린다.” 실제로 제주는 6월까지 9승 5무 5패로 리그 선두권을 유지했지만 7월 이후 2승 5무 4패를 기록하며 7위로 추락한 상황이다. 2년 연속 같은 패턴으로 성적이 떨어지자 제주 입장에서는 ‘원정 전략’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될 정도다. 박경훈 감독은 “일정에 따라 이동 경로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선수들의 훈련과 회복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계속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제주가 원정에 어려움을 겪는 만큼 상대팀도 제주 원정에서 힘든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실제로 제주는 홈 승률이 높은 팀 중 하나다. 하지만 체감 하는 어려움이 자체가 다르다. 정규리그 기준으로 각 팀은 한번씩 제주 원정에 나서지만 제주는 같은 수준의 원정을 15경기씩 치르는 셈이다.
제주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10여분의 비행 끝에 청주공항에 내렸다. 1년에 열 다섯개 지역으로 원정을 떠나는 제주는 원정 상대 연고지 인근의 거점 공항들을 통해 들어간다. 그나마 가장 반가운 곳은 수도권이다. 김포공항까지는 항공편도 많고 공항에서 각 도시에 있는 숙소로 들어가는 데 1시간 내외면 충분하다. 다음은 영남권이다. 마찬가지로 김해공항으로 가는 편수가 많고 부산, 울산, 창원, 대구 등이 1시간 내 거리다. 대전의 경우는 청주공항으로 가는데 제주에서 건너가는 항공편이 많아야 하루 세번이고 시간대도 편중 돼 있다. 제주에게 최악의 원정은 역시 강원이다. 속초공항이 폐쇄되면서 김포공항이나 청주공항으로 들어가 2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8월에 제주는 1주일 동안 대전(FA컵), 상주(K리그), 강원(K리그)을 거치는 최악의 원정 행군을 한 바 있다. 다행히 대전과의 FA컵 4강전에선 승리했지만 상주와 강원 원정에서는 1무 1패를 기록했다. 팀의 핵심 선수인 산토스마저 이 원정 도중에 부상을 당해 큰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원정이 장기화되면 제주로 돌아오지 않고 뭍에서 머물며 훈련을 갖고 경기를 치른다. 평소 박경훈 감독은 이동하기 쉬운 거점지인 천안축구센터를 선호한다. 숙소와 훈련지를 한번에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 8월에는 천안축구센터를 이용하는 팀들이 많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축구계의 지이들을 이용해 훈련장을 확보해야 하는데 홈팀의 텃세가 심할 경우엔 그마저도 어렵다.
선수단이 짐을 정리해서 공항을 빠져 나오면 구단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럴 때면 궁금해진다. 과연 선수단이 이용하는 버스는 어떻게 섬과 뭍을 오갈까? 비밀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보통 각 구단은 선수단 버스를 두대 보유하고 있다. 1군과 2군이 각각 다른 버스를 쓰기 때문이다. 제주는 그 버스를 한대씩 나눠서 제주와 육지에 상주하는 시스템으로 돌린다. 물론 운전기사는 상주하지 않고 버스만이 상주한다. 수도권과 호남권, 영남권으로 구분해 SK의 물류센터와 각 지역의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에 버스를 세워둔다. 그러면 제주에 있는 버스기사가 선수단에 앞서 미리 넘어와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공항에 도착해 있는 식이다.
7) 11시-대전으로 출발, 송진형과의 인터뷰
청주공항을 출발한 지 약 1시간, 제주 클럽하우스를 출발한 지 약 4시간여 만에 제주 선수단은 목적지인 대전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원정이 비슷한 이동거리와 소요시간을 보인다. 사실상 매 경기 기본적으로 타팀들이 가장 오래 걸리는 원정을 치르는 셈이다. 체력저하가 오는 여름철이면 부진이 시작되는 제주의 딜레마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말 강원에서 제주로 이적해 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권순형은 “강원도 매 경기 원정이 힘들다고 느꼈다. 하지만 제주는 그 두배 정도로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 2년차로 올 시즌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는 배일환은 “원정을 다녀오면 늘 진이 빠진다. 그나마 이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지만 이렇게 숙소에 도착하면 늘 지친다”며 침대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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