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이 오사카를 방문했다.
올 여름 치뤄질 리우 올림픽 예선 때문이었다.
탈북자인 친구는 마지막날 북일전을 보러 갔었다.
시합은 1-0으로 일본이 신승.
[북한 팀 쪽이 체격도 좋아서 이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친구는 꽤나 아쉬워했다.
그가 관중석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는데, 북한 선수 11명이 킥오프 전 모여서 자세를 취하는 사진이 있었다.
그걸 보자, 나는 23년 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이 떠올랐다.
바로 이번에 소개하려는 지방 여자축구팀 사진이다.
1997년 중국을 통해 온 탈북자에게 얻은 사진이다.
필름에 새겨진 날짜는 1993년 7월.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어, 지방에서는 막 아사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건물 벽의 도장은 벗겨지고, 창에는 유리도 없고 나무판이 덧대어 있다.
하지만 어느 대회에선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인지, 선수들은 자랑하듯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한 선수의 체육복에는 은덕이라고 적혀 있다.
중국 국경에서 가까운 함경북도 탄광촌이다.
자주 여자축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 스포츠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큰 기업에 소속된 체육단 선수들일 것이라 말했다.
축구는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 인민군이나 기업 슬하에 팀을 두고 선수들에게 좋은 대접을 해준다.
시합에는 많은 관객이 모여들어 자기 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판정이 이상하면 소요사태가 일어날 때도 있다고 한다.
사진을 제공받은 다음해, 나는 식량지원 관계로 은덕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직접 찾은 은덕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사흘간 은덕군에 머무르는 사이, 내가 본 자동차는 고작 3대 뿐이었다.
굴뚝에서는 연기도 나지 않고, 망치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역 사람들의 야윈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식량배급소를 찾았을 때, 어디선가 큰 함성이 들려왔다.
살펴보니, 옆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3주간의 북한 방문기간 중, 사람들이 생기 있고 밝은 모습을 본 유일한 순간이었다.
축구가 고난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평안을 전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탈북자 친구는 북한 여자축구팀이 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난 듯 했다.
[태어나서 자라고, 조상님이 묻혀계신 내 고향, 조국. 지금 정권 하에서는 무리겠지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어. 축구 보고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만 했어.]
http://mainichi.jp/articles/20160405/ddl/k27/040/421000c
페이스북 친구인 일본 기자님이 쓴 기사인데, 축구 관련 얘기도 나오고 해서 슬쩍 번역.
암흑 속에서 축구라도 희망이 되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