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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남자, 서울 여자.
- 너와 나 그리고 세 번의 슈퍼매치
- 3화. 첫 번째 슈퍼매치
수원 남자, 서울 여자 3화 첫 번째 슈퍼매치 - 2
2.
축구엔 행운이 필요하다. 2012년 10월 3일 개천절 슈퍼매치 수원은 오장은의 크로스 결승골로 승리를 거뒀다. 본래 크로스였던 그 볼이 조금만 덜 휘어졌더라면 득점에 실패하고, 슈퍼매치 연승행진도 끝나버렸을 것이다.
슈퍼매치 너와 나의 만남도 그랬다. 그 때 만약 내가 연간권을 들고 왔더라면, 네가 티켓을 예약했더라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엔 행운이 있어야만 한다.
3.
현우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상대방이 확인하면 없어지는 말풍선 옆 ‘1’ 표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 두 세 개씩 톡을 보냈다. 그러나 현우는 그 중 하나도 보지 않고, 답장도 하질 않았다.
“하…….”
긴 한숨을 내쉬며 뒷목을 어루만졌다. 이기적이었다. 이건 이기적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두려움 때문에, 걱정 때문에 현우의 입장을 생각 못했다. 아니 생각하지 않았다. 민아는 손바닥으로 뒷목을 찰싹 소리 나도록 때렸다.
‘우리 지금처럼 친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 정말 최악이다. 지금까지 민아와 현우의 만남은 도저히 ‘친구’ 관계라곤 볼 수 없다. 민아 또한 그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아는.
“바보야. 왜 해보지도 않고 끝을 생각한 거야!”
민아는 자신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어느 순간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착가하고 있었다. 그저 겁쟁이였다. 해보지도 않고 겁을 먹어 현우에게 상처를 줬다. 정말로, 정말로 바보 같다.
지잉-
탁자 위 핸드폰이 부들부들 떨었다. 민아는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는 화면을 바라봤다.
[슈퍼매치에 올 거야? - 익종]
민아는 양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곧장 휴대폰을 끄고 탁자위에 던져버리려던 순간 현우가 떠올랐다. 슈퍼매치에 가면 만날 수도 있다. 현우가 그 날 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고백하기 전에 한 말이기에 안 올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싶다.
[네, 당연히 가야죠~ 그 때 봬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눈을 감았다.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친구 따라 교회를 한번 따라간 게 민아 생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신앙 활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민아는 그 어느 독실한 신자보다 간절했다.
“제발, 제발 현우와 만나게 해주세요.”
저녁 하늘을 홀로 지키던 달님이 창문으로 기도하는 민아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4.
수원과 서울의 첫 번째 슈퍼매치.
수원의 홈구장인 빅버드(수원 월드컵 경기장의 애칭)에서 열리는 올해 첫 번째 슈퍼매치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몫에 받았다. 수원과 서울은 현재 엎칠락 뒤칠락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 경기의 승자가 곧 1위를 차지하게 된다.
경기 며칠 전부터 매스컴에서 슈퍼매치를 주목했다. 축구 팬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슈퍼매치는 단연 화제였다.
“아이고야.”
민아는 팔을 휘적휘적 돌리며 몸을 풀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 안에 몇 십분 간 있다 보니 온 몸이 찌뿌둥했다.
서포터 버스를 미리 예약하질 않아 할 수 없이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빅버드로 왔다.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나중엔 거짓말 조금 보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하차할 때도 민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인파에 휩쓸려 내렸다. 모두 빅버드에서 하차해 다행이지, 다른 데서 하차했더라면 꼼짝 못하고 그 정류장에 내렸어야만 했다.
“민아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따라 고갤 돌려보니 그 곳엔 익종이 서 있었다. 익종의 뒤로는 서울 서포터 무리가 보였다.
“오빠, 안녕. 지금 오는 거야?”
“응, 길이 막혀서 버스가 지금 도착했어. 너는 혼자 오는 거 안 힘들었어?”
“힘들었지.”
“고생했어. 정말 힘들었나보네. 목소리에 힘도 없고.”
익종이 민아의 등을 두어 번 두들겨줬다. 익종 무리와 함께 원정석 쪽으로 걸어갔다. 서울 서포터들이 모두 모이자 담당자가 차례차례 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야, 근데 너 구단 버스는 예약 안했다면서 티켓은 예약했냐?”
철호가 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
대답은 돌아오질 않았다. 민아는 계속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현우를 찾았다. 아까 익종에게 현우를 봤냐고 물어보니까 자신은 보지 못했지만, 오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와서 못 본 일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한명, 한명 유심히 살펴봤지만 아직까진 현우를 찾지 못했다.
“야! 이민아! 너 티켓 예약했냐고!”
민아가 대답을 하지 않자 철호는 한층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어? 뭐라고?”
그제야 민아는 정신을 차리고 철호를 쳐다봤다.
“너 티켓은 예약했냐고.”
“아, 맞다! 티켓!”
손뼉을 한번 치고는 멍한 표정으로 철호를 바라봤다. 철호는 그런 민아를 ‘그럴 줄 알았지’라는 표정으로 흘겨봤다.
“어떡하지? 아 왜 예약하는 걸 까먹어서.”
“잠시만 있어봐. 내가 남는 표 있는지 확인해보고 올게.”
“고맙다. 진짜 고마워. 철호야.”
“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정신 차려 인마.”
철호는 담당자에게 다가갔다. 민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현우에게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까 버스를 예약하거나 티켓을 예약하는 행동 따윈 잊어버리고 있었다. 현우가 먼저 경기장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손톱을 징걸 징걸 씹으며 철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야 남는 표 없데. 지금 빨리 티켓박스로 가봐. 현장 표가 남았을 수도 있어.”
“진짜? 알겠어. 고맙다”
철호의 말에 곧장 티켓 박스로 뛰었다. 뒤에서 철호가 뭐라고 외치는 거 같았지만 사뿐히 무시했다. 지금 자신에겐 티켓을 예매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티켓 박스 앞엔 벌써 긴 줄이 형성돼있었다. 민아는 제일 짧아 보이는 줄에 섰다. 헉헉 가쁜 숨을 고르자 근처 사람들이 자신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거 같았다.
까치발을 들고 언제 줄이 줄어드는지 살펴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현우였다. 푸른색 옷, 그러니까 수원의 유니폼을 입은 현우와 눈이 마주쳤다. 현우도 민아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현, 현우야.”
*수원 남자, 서울 여자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정기 연재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글 = 정재영(spego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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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kffactory.com/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