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박은선 선수 ⓒ아시아경제
조선시대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 21세기 남성들은 “오빠, 나 뚱뚱해?”라고 질문하는 여자친구에게 “그래, 뚱뚱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젠 여자인 축구선수를 WK리그에서 뛰질 못하게 하겠단다.
5일 박은선의 소속팀인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 6개 구단 감독 간담회에서 ‘박은선을 내년 WK리그 경기에 뛰지 못하게 한다.’라는 결의를 채택했고, 박은선이 계속 WK리그 경기를 뛴다면 내년 시즌 보이콧을 하겠다는 뜻을 모았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6개 구단은 박은선이 리그에서 뛰면 안 되는 이유로 ‘성정체성’을 내세웠다.
성별도 아니라 성 정체성이 때문이라니. ‘개인이 남성 혹은 여성 또는 그밖에 제3의 성별이라고 느끼는 내면적인 자아의식.’ 성 정체성의 사전적 정의다. 그러니까 WK리그 6개 구단은 박은선의 내면적인 자아의식이 ‘남성’이기 때문에 내년 시즌 리그에 뛰지 못하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거다. 게임이 마약이라는 말보다 더 어이없다.
박은선은 유소년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선보인 축구선수다. 그러나 신은 박은선에게 축구 재능과 함께 악동기질을 세트로 줬다. 박은선은 10대 시절부터 자주 팀을 이탈했다. 코칭스태프와 동료 선수들과의 다툼도 잦았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박은선이 달라졌다.
박은선은 방황했던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훈련량은 물론이고, 동료들과의 소통도 중요시 했다. 2012년은 체력이 완전치 않은 탓에 중앙 수비수로 주로 맡고, 가끔씩 공격 역할을 했다. 올해는 시즌 시작부터 공격수를 맡았다. 이후 2013 정규리그 득점왕을 거머쥐었으며, 고양과의 플레이오프 때는 1-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2골을 집어넣으며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었다.
2013년 박은선은 그야말로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다른 구단들이 박은선과 대결하길 꺼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상대 구단들은 최선을 다해 전략을 세워 박은선을 꽁꽁 묶어야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박은선을 꽁꽁 묶어 리그 밖으로 던지려고 하고 있다. 전혀 감독답지도, 남자답지도 못한 행동이다. 박은선이 아니라 6개 구단 관계자들의 성정체성을 의심해야 될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도 처음 박은선을 봤을 때 남자 선수인 줄 알았다. 180cm, 74kg의 피지컬은 웬만한 남자 축구 선수 뺨친다. 그러나 박은선은 분명한 여자 선수다. 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모두 여자 축구 대표 팀에서 뛰었다.
FC바르셀로나의 전설요한 크루이프는 “추하게 이길 바에야 아름답게 지는 쪽을 택한다."라고 말했다. 맞서 싸우지 않고, 피하는 6개 구단의 모습은 추하다. 또한 박은선에게도 깊은 상처를 안겼다. 여성이 ”너는 성정체성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분명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것이고, 심한 경우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거다.
물론 WK리그 6개 구단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이런 결의를 채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그들의 행동엔 쌀 한 톨만큼의 정당성도 없다. WK리그 6개 구단은 무조건적으로 박은선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만 한다.
글 = 정재영(spego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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