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공에 본격적으로 이주(?)해서 활동하기 전, 눈팅만 했을 때 재밌게 봤던 글들이 있었는데
아래 글에 댓글 달던 중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읽어볼 만한 글들을 발견해서 재탕해봄
개발공에서 가릴 건 가리는 위아더 종자(?)를 표방했던 @부루부루부루 횽의 글들임
[개장문] 북패공정의 핵심 '연고 공동화'가 씨알머리 먹히는 이유
이 글에서 약간 용어 해석에서의 혼동이 있던 거 같지만, 연고 공동화 '정책' 주장이 북패충들뿐만 아니라 타 지지자들에게도 먹히는 이유를 조명했더라고
읽어보면 좋겠지만 골자를 추려보자면
- 현재 개축판이 흥행하지 못하는 것은 야구 때문이고, 야구에 대한 개축빠들의 컴플렉스가 생겨났다
- 이 점을 노려,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수도 서울에 자리 잡던 '동대문 세 식구'가 흩어졌는데 만약에 그대로 있었으면 동대문 더비로 개축은 야구를 뛰어넘는 흥행을 했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대두됨
- 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개축빠들은 이 주장에 동조했고 개축 발전을 위해 야구를 꺾어야 한다는 위아더 종자들의 입맛에도 맞아서 연고 공동화 정책론이 지배적인 입장이 되었다
나도 ㅇㅆ에 있었을 때 느낀 게, 군대 전역한 12년과 그 전의 ㅇㅆ 분위기가 매우 달랐거든
혐야구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위아더 성향의 글들도 늘어났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 같아
거기다 ㅇㅆ는 점점 북패충들의 멀티가 되어가는 점도 있었고
오죽하면 사자성어 중에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겠어
결국 북패충들이 단순히 연고 복귀를 옹호하기 위해서만 연고 공동화 정책론을 꾸준히 미는게 아니라, 더불어 타 팀 지지자들까지 동조시키기 위해 이런 논리를 덧붙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북패충들이 '우리 서울에서 강제로 쫓겨남ㅠㅠ' 계속 이 ㅈㄹ해대는데
이 글에선 북패충들의 연고 공동화 정책에 대해 반문했는데, 역시 골자를 이 횽이 정리한 사실을 인용해서 보자면
< 동대문 시절에 LG는 이미 '서울팀'이란 연고 의식이 있었다
- 당시에도 '연고'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연고지 정착이 확실히 되어 있지 않다는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연고'와는 다른 의미이며, 94년과 95년 지역 연고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home'으로서의 '연고'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음
따라서 LG가 동대문에 있던 93년, 94년 당시 '연고'를 지금의 '연고'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아주 기초적인 오류
지역 연고제 정착과 서울 공동화는 2002년 월드컵 성공적 개최를 위해 축구붐을 일으킬 필요를 느낀 정부와 연맹 주도로 시작 되었다
- 현재의 '연고' 개념이 필요하단 것은 구단 관계자들이 93년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사안으로,(혹은 그 이전일 수도 있음) 계획까지 나온 것으로 보면 구단들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음 하지만 지역 연고를 잡는데 구단만의 힘으론 역부족이므로 연맹이나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단 인식 또한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리고 구단들 간의 논의에서 서울을 비우자는 논의가 있었음
즉, 지역 연고제 정착은 진즉에 구단들이 먼저 꺼낸 문제였고, 구단들 스스로 서울을 비워놓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음
하지만 구단들의 의견과 힘을 모을 연맹이 설립되지 않아 협회가 이 문제에 나섰고, 차후 1994년 7월 30일 연맹이 설립되면서 이 책임을 이어가게 됨
또한 연맹이 독단적으로 서울 공동화를 강제로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연맹 설립 당시 7개 단장이 10명의 대의원을 구성하고 있었음(지금도 연맹 이사회에 구단 단장들이 참가하고 있음)
더불어 서울에 삼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울을 비워놓은 거란 북패충 주장들도 개소리ㅇㅇ
결국 북패충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당시 자료에서 인용하는 '연고 의식'은 지금의 '연고'와 다른 개념임
(물론 당시 광역 연고 등이 시행되었지만, 93년 기사를 참조해보면 역시나 지금의 '연고'와 동일시하기엔 부족함)
또한 지역 연고제는 구단 스스로가 필요해서 추진한 것이었고, 이때 서울을 비워두는 것 또한 이미 93년에 구단 사이에서 논의된 이야기였음
하지만 지역과 연고를 맺기에는 구단의 힘만으론 역부족이었음 그래서 당시 개축 구단 관리를 맡은 협회 분과위원회가 이끌다가 연맹이 설립된 94년 7월 30일 이후 연맹이 이를 맡게 되었고
결국 구단들 스스로 서울을 비울 생각도 하였고, 이걸 연맹이 주도한 것도 구단들이 자기들끼리는 힘드니까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고 ㅇㅇ
거기다 단장들이 대의원으로 있는 연맹이 강제로 내쫓았다? 당시 동대문 3개 팀 단장들이 빙다리 핫바지도 아닌데 이게 가능한가 모르겠네 ㅇㅇ
그러니 '강제로 쫓겨났다' 이 말은 성립될 수가 없음 >
그냥 북패충들의 북패 공정이 다시금 대두되는 지금, 한 번 더 살펴보면 좋을까봐서 인용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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