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1번 배너2번

베스트


채팅방 접속자 :

접속회원 목록
출석
순위 출석시각 별명
출석한 회원이 없습니다.
.


벌써 40년 전이다. 내가 갓 축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군산에 내려가 살 때다. 전주 왔다 가는 길에, 전주역으로 가기 위해 동산역에서 일단 기차를 타야했다. 동산역 맞은편 월드컵 경기장에 앉아서 발리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득실이나 한 점 늘리고 가려고 발리를 깎아 달라고 부탁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download?fid=642246f0cd81bbc76cfa46f0cd7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발리슛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서 넣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깍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골 넣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idTIn9QPDVXlF.gif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넣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넣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발리슛이란 제대로 차 넣어야지, 헛발질해서야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공을 숫제 스터드 밑에 두고 태연스럽게 세레모니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크로스 궤적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차서 넣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발리골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축구를 해 가지고 축구가 될 턱이 없다. 관중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연봉만 되게 부른다. 다득점(多得點)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전주성 지붕 끝자락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자글자글한 주름살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anigif.gif


개발공에 와서 발리슛 직캠 영상을 내놨더니 유저들은 이쁘게 깎아넣었다고 야단이다. 주멘이 깎은 발리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저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슛이 너무 강하면 활공을 잘하고 난쏘공이 되기 쉽상이며, 슛이 너무 약하면 소녀슛 타이틀을 달기가 쉽상이란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yDsLYr.gif



...중략...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응원가에 백네임 마킹 한 벌 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전주를 향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전주성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國同李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53D25408482D960026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신임 감독이 포항을 패고 있었다. 전에 발리슛으로 울산, 수원을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원더골에 환호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경쾌한 슈팅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발리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문 : 방망이 깎는 노인


안내

※ 7회 이상의 추천을 받은 글을 모아둔 게시판입니다.
※ (2013년 3월 22일 이전의 글들은 원문이 따로 존재하여 댓글/추천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 (해당 날짜 이후의 글들은 원문 자체가 이곳으로 이동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조회 수
공지 크풋볼 선정 K리그 30년 잉여 일레븐 19 file title: 강원FC_구roadcat 2013.05.26 3 34750
공지 크풋볼 선정 K리그 30년 베스트 일레븐 10 file title: 강원FC_구roadcat 2013.05.26 8 34260
1721 부산형들 어제 고맙소. title: FC안양_구ScummoB 2019.03.03 5 2106
1720 닉네임 왼쪽 엠블럼을 왜 달았는지 생각을 해보자! 1 title: 안산 그리너스 FCCRAZY 2019.02.16 10 2574
1719 아파트 개포터 공지 뜸 23 title: 부산 아이파크부산빠순구 2018.12.03 5 3118
1718 9일 상암 복장을 정했다. 5 file title: 인천 유나이티드_구계양산도사 2018.12.01 11 2696
1717 5분만 시간 내어주라 3 title: 부산 아이파크부산빠순구 2018.10.10 11 2353
1716 득녀했다 48 title: 전남 드래곤즈_구yellowmarine 2018.10.08 13 2225
1715 횽들 위한 좋은 소식 19 Pindakaas 2018.05.23 7 2005
1714 아... 쑥스럽지만... 자랑 좀... 10 title: 인천 유나이티드_구꼬출든남자 2018.04.23 17 1757
1713 정든 s석을 떠나야 할지 고민이네 8 title: 인천 유나이티드_구05내사랑 2018.04.22 12 1725
1712 고객이 아니라 잠재적 고객들의 말만 믿는 연맹 축협럼들 8 title: 성남FC후리킥의맙소사 2018.04.08 13 1628
1711 글모르는 축구팬...... 29 file title: 인천 유나이티드_구27솜사탕 2018.03.13 16 1116
1710 움츠린 사슴이 아니라 사냥에 실패한 사자를 조롱하라 15 title: 수원 삼성 블루윙즈택티컬마린 2018.03.12 7 1359
1709 이학민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옴. 6 file title: 성남FC코노리노츠바사 2018.03.10 11 1386
1708 서포터들 하는짓보면.. 4 title: 2015 인천 20번(요니치)반달곰 2018.03.10 11 1327
1707 서포터 시발놈들ㅋㅋㅋ 꺼져라 4 title: 2015 인천 7번(김도혁)김도혁 2018.03.10 7 138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5 Next
/ 115
.
Copyright ⓒ 2012 ~ KFOOTBA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