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ve, My Suwon - 29

by BOT posted Oct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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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8시가 됐다. 잠에서 깨어난 건 순전히 초인종 벨소리 때문이었다. 호철이 형이 온 것이었다. 내가 옆에 박아 놓은 상자들을 차에 싣는 동안 그녀는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찬휘 형은요?”

  “미혜가 늦게 일어나서 지금 오고 있다는데. 일단 내 차에 다 옮기려고. 공간이 남아야 할 텐데…….”

트렁크는 앞으로 우리가 먹고 마실 것들로 가득 찼다. 뒷좌석에도 한 명이 앉을 곳만 빼면 짐들이 자리를 점령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연신 머리를 말리고 화장 중이었다. 대충 씻고 나갈 준비를 끝마친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래. 내 여자니까. 이해를 해 줘야지.’

 

  그녀의 변신 덕분에 두 명이 집에서 나온 시간은 호철이 형이 온 지 거의 1시간 후였다.

  “너희들 일찍 안 일어나고 뭐 한 거야?”

  호철이 형이 겸언 쩍은 목소리로 차에 타는 우리들에게 물었다. 내가 앞에 그녀가 오른쪽 뒷자리에 앉았다.

  “그냥 잠만 잤어요.”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자 호철이 형이 물었다.

  “.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오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가요.”

  “오늘 밤에 물어봐서 진실게임이라도 해야겠는데……. 좋아. 가자.”

  호철이 형이 시동을 켜자 카오디오에서는 평소 스콜피온스를 좋아하는 형답게 ‘The Game of Life’ 노래가 들려왔다. 호철이 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학교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면서 어제 K리그 경기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포항이 성남을 잡았더라고. 집에서 생중계 봤는데 말이야. 자책골이 결승골이 될 줄은 몰랐지.”

  “포항이 성남한테는 강한 것 같은데…….”

  “황진성이랑 김재성이 잘하더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엊그제, 무작위 추첨을 통해 나눠진 조 추첨 결과였다. 그리고 그녀는 한 쪽에 이름표들을 만들어 놓은 주머니를 가지런히 꺼내서 살펴봤다. 24명이 온다고 한 가운데, 8명이 한 개 조로 그녀가 프로그램을 돌려서 뽑았다는데 각 조별로 멤버들은 다음과 같다.

 

  1: 손민철(99, 졸업), 김정호(05, 사학), 조용호(05, 신문방송학), 최승현(06, 경영학), 박지은(06, 경영학), 정미혜(06, 시각디자인학), 이수훈(08, 영어학), 여민정(08, 토목학)

  2: 이승규(04, 생활체육학), 유가람(04, 졸업), 전호철(05, 토목학), 김지수(06, 경영학), 오세환(07, 법학), 안승진(07, 법학), 김은경(07, 영어학), 나진영(07, 법학)

  3: 주혜정(04, 졸업), 강정원(04, 졸업), 주영은(04, 졸업), 정영재(05, 스페인어학), 전푸름(06, 지리교육학), 김찬휘(06, 시각디자인학), 정인혁(07, 컴퓨터공학), 강은별(07, 국어교육학)

 

  이 리스트를 처음 보면서, 몇 명은 내가 한 번도 못 분들이었다.

  특히 08 학번이라고 적혀있던 여민정이라는 이름은 처음이었다.

  “여기 보니까 처음 보는 분들도 꽤 있네요.”

  “? 그런가. 하긴 그럴 거야. 직장 잡으면 오겠다고 했던 영은이 누나는 드디어 직장을 잡은 게 아니고, 인턴 중이라고 해서 웬일로 오신 거고. 푸름이는 제대했어. 저번 주에……. 입학하자마자 한 경기를 같이 보고 그냥 갔었나? 어쩌다 서로 휴가 겹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말이지. 영재도 얼마 전에 제대했고, 인혁이는 첫 휴가 엊그제인가 나왔더라고. 역시 우리 아길레온즈’ MT 날에 맞춰서 휴가 맞추는 센스 칭찬 안 할 수 없다니까.”

  호철이 형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해주셨다. 그러나 내가 정작 원하는 소개는 따로 있었다. 물론 호철이 형은 나의 기다림을 끌지 않게 해주셨다.

  “민정이는……. 내 후배야.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고, 어쩌다 1학년 수업을 같이 듣다가 말이지.”

  그녀는 지난 주 토요일 경기가 끝나고 들었던 걸 기억하고 갑작스럽게 질문을 호철이 형에게 던졌다.

  “오빠. 혹시 소개팅이라고 말한 여자가 걔는 아니죠?”

  그러자 호철이 형이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 아냐. 그 때 만난 애는, 제길. 애프터 취소당했다.”

  “어이쿠.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몰라. 수원 티를 입고 간 거?”

  그녀는 머리를 치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댔다.

  “어이쿠. 에러네. 그것도 제대로. 이건 나는 축구에 미친 인간이니까 연애 따위엔 관심이 없다.’ 이런 거 아니야.”

  그 때 운전대를 툭툭 치며 호철이 형이 외쳤다.

  “축구 이야기에 자도, 단 한마디도 안 꺼냈다니까!”

  “그래도 한 번은 물어봤겠죠. ‘조기축구회 다녀요?’ 최소한 이 정도로?”

  그녀의 말에 호철이 형의 한 마디.

  “. 그거야.”

  “어떻게 소개팅 자리에……. 여자가 싫어하는 세 가지 이야기 아시죠?”

  이건 필시 축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였다.

  “그럼 너는 남자냐?”

  “전 그래도 최소한 소개팅 자리엔 정상적인옷을 입는다고요. 적어도 첫 만남일 때는 숨겨야죠. 신분을.”

  “누나. 처음 저 만났을 때는 수원 트랙탑 입고 오셨잖아요.”

  “너는 이미 수원 팬인 거 알아차렸으니까. 그럼 너도 마찬가진데 뭐. 그리고 신입생들 사귀려고 간 것도 아니었으니까 필요 없지. 아길레온즈홍보 차원에서 왔을 뿐이었으니까.”

  “. 여자가 유니폼 입고 나오면……. 생각해보니 남자 입장에선 얼씨구나 아닌가요?”

  “당연하지. 게다가 수원 팬이면 아주 끝내주지.”

  “. 형이 연애하기는 글렀네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 너 여자 있으면 다야? 이참에 민정이나…….”

  “오빠. 이건 도둑질이에요. 어디서 05학번이…….”

  “원래 솔로라면 별별 생각을 다 해보는 거야. 그러니까 생각만……. 그리고 그 정도 학번 차이면 궁합도 안 봐!”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약속 장소인 학교 입구에 도착을 했다. 약속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걸어서, 아니면 같이 차를 타고서 아길레온즈멤버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있었다. 호철이 형이 말씀하신 대로 처음 뵙는 분들과 첫 인사를 했고…….

  처음 보는 여자 분이 모습을 나타냈다. 호철이 형이 손짓을 보냈다.

  “민정아. 여기야.”

  그녀의 머리는 뒤로 묶은 포니테일이었다. ‘아길레온즈남자 멤버 대다수가 산뜻한 연푸른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 저 여자는 누구야?”

  정호 형이 물었다. 진영이 형 역시 눈길을 향했다. 그러자 은별이 누나가 아주 따뜻한 눈초리를 진영이 형에게 보냈다.

  호철이 형이 정호 형에게 후배 신입생이라고 말하자 그녀의 입에서 첫 인사가 나왔다. 자기소개는 덤이었다.

  “안녕하세요? 토목과 08학번 여민정입니다. 사실 제가 수원 팬도 아니고, 경기장에도 가 본 적도 없는데. 여기 있는 호철이 오빠가 소개를 해주셨어요. 여러 분들과 인맥도 쌓고 축구도 보고 싶어서, 가입도 늦게 했는데……. 부족한 것도 많겠지만,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 솔로들의 박수갈채가 터져왔다. 환영의 인사들 역시 덤이었다.

  “그러고 보니 08학번이면 수훈이랑 같은 학번이잖아?”

  이 와중에 승규 형이 물었다. 어쩌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을 했다.

  “그러게요. 08학번이 저 뿐이었는데 말이에요.”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괜히 다정하게 인사를 걸었다가, 옆에 있는 그녀의 반응은 분명 삐질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간단히 안녕이라는 말로 끝을 냈다. 그러자 민정이 역시 환한 미소로 대답을 해줬다.

  이럴 때 마음속에는 이 생각뿐이었다.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너무나 민정이의 첫 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렇게 썩 마음에 들어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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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kffactory.com/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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