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ve, My Suwon - 21

by BOT posted Aug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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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랑 그녀는 약속 장소인 코너킥 깃발이 있는 S석과 W석의 경계 부분, 아래쪽에서 삼분의 일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왠지 선수들이 이쪽에서 골 세리머니를 펼쳐 보일 것 같아서 이 자리에 모이자고 한 건지 모르겠다. 비록 카드 섹션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자리였지만 말이다.

 

  30분이 지나자 아즈로멤버 형들과 은별이 누나가 도착했다. 진영이 형이 나와 그녀와의 낌새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진영이 형은 우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왜 네가 나한테 누구랑 사귀는 지 말 안했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수훈아. 넌 쟤가 퀸카로 보이는 거냐?”

  “! 그럼 너는……. 됐다.”

  그녀는 잔뜩 화를 냈다.

  “제 눈에는 퀸카예요.”

  “에혀. 난 모르겠다. ‘아길레온즈내부에만 커플이 세 쌍이야. 이건 무슨……. 난 누구랑 경기 보러 다닐까나.”

  세환이 형이 투덜거렸다.

  “넌 군대나 가. 석 달도 안 남았잖아.”

  진영이 형이 받아쳤다.

  “넌 나랑 동반입대면서 뭔 말이 많아. 내가 장담한다. 은별이는 100%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 거야.”

  “내가 왜 네 맘대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고 말하는데?”

  은별이 누나가 짜증을 냈다.

  “아직 초반이니까……. 에라이. 내가 빨리 커플 만들고 말지. 더러워서.”

  ‘아길레온즈의 첫 번째 공식 커플인 찬휘 형과 미혜 누나가 온 건 그때였다. 은경이 누나가 나랑 사귄다는 걸 말하자 반응은 하나였다.

  “‘아길레온즈멤버끼리 다 커플 되는 거 아니야? 세환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길레온즈에도 괜찮은 누나들 많다.”

  찬휘 형이 세환이 형에게 귀띔했다.

  “그게 누군데요?”

  “저기 오시네.”

  찬휘 형이 가리키는 방향에선 주혜정 누나, 박지은 누나, 그리고 처음 보는 두 명이 같이 계단을 내려왔다.

  “나쁘진 않네요.”

  내가 중얼 거렸다.

 

  혜정이 누나는 나의 소식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 북패 애 혼쭐내준 수훈이 아니야.”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호철이가 승규한테 말해줬었고, 승규는 다시 나에게 말해줬었지. . 그러고 보니 너는 옆에 있는 애들 모르겠다. 소개해줘야겠다. 얘들아. 얘가 이번에 아길레온즈들어온 08 신입생 이수훈이고, 과는 은경이랑 같은 영어학과야.”

  이렇게 말하자 혜정이 누나 왼쪽에 있는 분이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 나도 얘랑 04학번이고, ……. 이름은 김정원이야.”

  “안녕하세요?”

  오른쪽에 계신 분도 인사를 했다. 지금은 팀을 떠난 김남일 마킹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도 뭐 이렇게 세 명이 쭉 아길레온즈생활 했었으니까. 다른 건 모르겠고, 잘 지내자. 유가람이야.”

  “안녕하세요?”

  인사가 끝나자마자 승진이 형이 누나들의 최근 근황을 물었다.

  “드디어 직장 잡으셨나 봐요?”

  “? 나는 뭐……. 원래는 직장 잡기 전엔 절대로 경기장 안 온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제길. 약속 어겨버렸네…….”

  정원이 누나가 말했다.

  “누나, 약속 어기면 경기장에서 뭐 사준다고 약속 안했어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호철이 형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런 약속을 내가 언제 했냐?”

  “작년 플레이오프 때요.”

  “몰라.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누나가 술에 잔뜩 취해서 기억 못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녹음을 해 두는 건데 말이야.”

  호철이 형은 말이 잘 안 통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이, 안 넘어가네. 아쉽다.”

  “? , 너 죽을래? , 그리고 얘는 취업했어.”

  이러자 유가람 누나는 우쭐대면서 말을 꺼냈다.

  “임용고시 통과했어. 그리고 일단은 학교에서 일하다가……. 고등학교야.”

  세환이 형이 못 마땅하듯이 말했다.

  “누나가 애를 가르친다고요? 난 진짜일 줄 몰랐는데…….”

  “내가 왜? 어때서? 애를 못 가르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누나는 왠지 애들을 차별할 지도 모를 것 같아요.”

  “?”

  “수원 좋아한다는 애들은 사랑으로, 그 외는 매로 다스리는 거 아닌가요?”

  “이게 무슨 너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거니. 그 나이에 애들이 수원을 응원하면 자제 시켜야지. 공부를……. 내 과거의 이야기라서……. 그런데 학교가 참 좋은 곳에 있어서 수원 응원하는 애들도 있으려나?”

  “학교가 어디에 있는데요?”

  “마포구…….”

  “이건 뭐 적진의 한 가운데에 포진한 거나 다름이 없네.”

  호철이 형이 군사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혀를 찼다.

  “그래서 특히 그 팀 좋아하는 애들은 공부만 하게 만들어야지.”

  “이 무슨, 애들 취미 생활까지 간섭하는 나쁜 선생이네.”

  세환이 형이 중얼 거렸다.

  “네가 그렇게 차별 운운해서 그렇게 나온 거잖아. 그러면 안 되는데……. 혹시 모르지. 김진규 좋아한다는 녀석 있으면 머리에 주먹을 쾅하고…….”

  “누나, 그러다 카메라 찍혀요.”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맞는 건 다반사였는데, 어찌 이리 되었냐.”

  호철이 형이 한탄했다.

 

  경기 시작 시간이 어느덧, 삼십 분만을 채 남겨놓지 않았다. 양 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워밍업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워밍업 훈련 중인 우리 선수들의 분위기는 매우 좋아보였다. ‘아길레온즈멤버들이 거의 다 모인 것도 이 때였다.

  전광판에서는 역대 수원과의 경기에서 승리했던 상대의 영상을 보여줬다. 작년 1-4 대패의 장면도 여지없이 나왔다. 물론 이관우의 프리킥 어시스트를 받은 마토의 헤딩 선제골이 터질 땐 우리 쪽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그 이후엔 경기 장면에 누구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일 년이 지난 과거를 들먹여서까지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생각이 웃겼다.

  박주영의 해트트릭이 나올 때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그래도 2005년 그 때문에 K리그를 접했던 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중에 한 명일 뿐이었다. 상황에 따라 야유를 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 까라는 생각도 가져봤다.

 

  경기 시작 전, 상대 팀의 거친 함성이 들려왔다. 새로 입단한 무삼파의 입단식 때문이었다. 무삼파는 과거 맨체스터 시티에서 뛴 경험을 보유한 선수라고 한다. 보기 드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신의 선수가 K리그에 온 것. 그럼 뭐하나. 우리한테는 야유 밖에 나오지 않는데……. 사실 야유 정도는 애교였다.

  “무파마 동생이냐!”

  세환이 형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우리 아길레온즈회원 모두가 웃어댔다. 무슨 라면이름이랑 비슷한 건지. 그 후 무삼파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경기에 출전해서, “K리그는 빠른 리그라고 칭찬했다.[각주:1]

 

  관중들이 많이 온 경기장에서, 드디어 양 팀의 서포팅 대결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어떻게 상대의 카드 섹션이 움직이긴 움직였다. 약간 우리보다는 엉성하긴 했지만, 우리 쪽이야. 워낙 카드 섹션을 많이 해서(오히려 안 하는 날이 이상할 정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알레! 수원 블루윙! 오오오오오! 수원 블루윙! 오오오! 오오오! 오오!”

  경기장이 조금씩 달아올랐다. 이럴 땐 패륜 송을 한 번 불러줘야 제 맛인데 말이었다.

 

  경기의 출전 멤버가 소개 되었다. 우리는 딸랑 화면 한 번 보여주더니(오타가 없는 것에 감사를 해야 했나?) 상대는 무슨 CG로 떡칠이 된 선수 소개 영상을 보여줬다. 야유를 한 삼분이 넘게 했나보다.

  “, 야유 그만해. 우리 응원할 때나 목소리 크게 내야지. 저런 거에 목소리 낭비하기도 아깝다.”

  호철이 형이 나에게 말했다. 여러모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오늘의 수원 블루윙즈 선발 라인업은 지난 주 부산 원정 승리를 했을 때의 스쿼드와 다르지 않았다. 백지훈과 하태균이 부상으로 빠졌지만, 가용 가능한 선수로는 정예의 멤버였다. 상대의 스쿼드는 정조국, 박주영, 데얀 쓰리톱으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공격진을 선발로 투입했다. 그리고 허리엔 이청용이라는 패스 하나 만큼은 인정하고 싶은 그가 나왔다

  1.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시즌이 채 절반이 지나지도 않을 때, 그는 방출되었다. 출전 경기 수는 다섯 손가락 안팎일 것이다. 향수병이 원인이었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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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kffactory.com/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