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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미디어]루머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by 흥실흥실 posted Jan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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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시즌 후반기에 나는 '앙리 리에르'라는 가상의 선수를 만들어냈다. TV를 보다가 교보 AXA의 CF에 등장하는 인물 '앙리'씨의 이름과 '거짓말쟁이'라는 뜻을 담아 'lier'라는 영단어를 합친 것이다.(리에르는 대충 프랑스 느낌나게 발음한 것) 그리고 디씨인사이드 국내축구갤러리에서 몇몇 포항 팬들과 함께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 출신, 그리고 장기 부상 후 2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왼쪽 윙백(그때 포항 취약 포지션이 왼쪽 윙백이었다)이라는 거짓 이력을 만들어서 마치 포항이 2012 시즌 끝나는 대로 앙리 리에르를 영입할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3명이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니까 그 루머는 아직까지도 근근히 생명력을 유지했고, 알싸에까지 그 소문이 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앙리 리에르'는 루머들을 유포시키는 이른바 '빅 마우스'(나는 약장수라고 부른다)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상의 선수가 회원수가 매우 많은 축구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루머가 어떻게 유포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루머를 유포시키던 중에 갑자기 흥미를 잃어서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리에르 루머는 꽤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이른바 '내 지인의 지인이 에이전트인데'라는 루머의 뻔한 레토릭까지 섞었다면 어땠을까? 선수 사진과 플레이 동영상까지 만들어냈다면 어땠을까?


  사실 많은 루머들이 그렇게 생산되어 유포되는 것들일 것이다. 가령 수원이 프란델리와 즐라탄을 영입하려 했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아마 그렇게 돌았을 것이다.(더 황당했던 건, 그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이었다.) K리그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팀이었기에 나름 설득력을 얻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이야기는 '모 구단이 청소년 대표팀 시절의 메시에게 영입제안을 했었다'라는 후일담처럼 여겨지는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뻔한 소설로 생각되어지고, 그걸 진지하게 이야기한 사람도 썩 좋게 보이진 않는다. 사실일수도 있겠지만, 이론상으로는 험멜이 호날두 영입을 시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수원의 즐라탄 오퍼설은 그거보단 한 10% 정도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떠들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왜 자꾸 지어내고, 유포시키는가? 크풋볼 시크릿 게시판의 글들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는 루머들을 만들어내는 약장수들은 무엇을 위해 그런 루머들을 양산해낼까? "남들보다 정보력이 빠르다"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에이전트가 언플을 위해 심어놓은 알바일까? 그냥 관심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그 '약장수'들을 무척 혐오한다. 사실 확인도 불가능하고, 자신들이 틀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뻔뻔함은 참 혐오스럽다. "내 지인이 에이전트"라는 말들은 "밤에 여자를 따라다니는 검은 승합차" 같은 도시괴담 같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약장수'들을 대놓고 깐다. 하지만 그들을 까기에 앞서, 그들이 왜 등장하는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적소설'은 욕구불만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한국 언론들은 이적루머에 대한 보도에 인색하다. 어처구니 없는 '썰'들이 보도 되기도 하는 해외 언론과 비교하면 한국 언론들은 무척 점잖은 편이다. 해외 언론에서 보도되는 루머들은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고, 구단과 선수들이 보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 언론들은 애초에 그런 보도를 하지 않는다. 이적이 완전히 성사되어야만 보도가 된다. 그나마 흥미를 끌만한 기사들은 에이전트가 선수들의 몸값을 부풀릴려고 만들어낸 '언플'의 성격이 강한 보도들이다.('현지 언론'을 끌어다가 루머에 신빙성을 획득하려는 축구팬들도 있지만, 해외 언론의 특성상 그 언론들이 전적으로 믿을만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과 같은 환경에서 비시즌기의 축구 보도는 자연스럽게 단조로워질 수 밖에 없다. 콘텐츠의 문제가 '약장수'들을 키운 것이다. 리그의 흥미도 떨어진다. 그렇다면 왜 이런 태도를 여전히 고수하는가? 구단 운영을 투명하게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 관리가 쉬운 한국의 특성상, 기자들을 관리해서 각종 보도들을 막아두면 잡음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기자들은 취재대상에게 사전에 "~한 보도가 나갈 것"이라는 조율과정들을 거치곤 하는데(연예기사들도 그렇다), K리그는 철저히 구단 위주로 보도를 컨트롤 할 수 있다. 기자이기보다 팬심이 강한 기자들이 알아서 정리해주기도 한다.


  현재 K리그는 구단 운영에 관해서 팬들에게 공개된 것이 너무 적다. 언론의 역할은 구단의 운영을 고발, 감시하며 팬과 함께 구단의 방만한 운영을 견제하는 역할도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문제가 생겨도 이미 사건이 손쓸 수 없어진 뒤에 보도한다. 늘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기사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K리그 구단들이 투명해지길 바란다. 단순히 약장수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K리그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첫 단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단의 투명성 문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