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축구

2004년초 연고이전 시국 당시 베스트일레븐 기고되었던 기사,칼럼 정리해봤음 ㅇㅇ

by 여촌야도 posted Dec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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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호 p88-91 험난 여정의 끝은 어디인가(서울구단 탄생 어제 오늘, 그리고....) 기사 요약


`서울시와 축구계의 갈등이 심화될 즈음, 과거 서울을 연고 삼았었던 안양LG가 2월 2일 `서울연고 복귀선언`이란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새로운 국면에 도래한다. 90년부터 서울을 연고로 활동하다 96년 안양으로 옮겼던 안양LG의 서울이전 선언으로 문제해결의 열쇠는 프로연맹으로 넘어갔다.`


先창단 원칙 철회 파트중 일부발췌 


` "서울연고구단은 월드컵경기장 건립분담금으로 150억원을 내야한다. 신생팀 창단을 위해 여러 기업을 타진할 때도 150억원이 조건이었다. 당연히 이전하는 구단도 150억원을 내야한다."

 2월6일 연맹이사회에서 밝힌 축구협회 조중연 부회장의 말이다. 지원금으로 알려진, 축구협회가 서울시에 납부한 100억원은 `대납`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서울연고구단에게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요지다.`


쟁점 I. 건립분담금 파트중 일부발췌


서울연고 구단의 선정과 진행과정, 이후 절차를 두고 프로연맹과 서울시가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였다. 프로연맹이 대의원총회를 통해 기존구단의 서울이전을 수락한 이튿날인 2월 7일, 제4차 추진위원회에서 프로연맹과ㅑ 서울시 측은 서로 서울구단 선정에 주체가 되야 한다는 양보 없는 설전을 펼쳤다. 연고이전과 관련한 제반사항은 K리그를 주관하는 프로연맹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과 100억 지원, 서울월드컵경지앙의 소유권 등을 내세운 서울시의 대립이었다.


쟁점 II. 주도권분쟁 파트중 일부발췌


안양LG 이전선언의 핵심은 살던 터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83년 창단해 충청남북을 연고로 하다 90년 서울로 옮긴 LG(당시 럭키금성)는 프로연맹 측이 균형적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서울연고를 배제하자 96년 안양으로 다시 터전을 옮겼다. 안양LG의 입장은 축구발전을 위해 서울을 떠났고 이제 그 지리를 되찾는다는 기득권에 방점을 찍고 있다. LG측은 "우선 서울에 팀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 창단이 힘든 상황이기에 이전을 막을 수는 없다. 이로 인해 축구붐이 확산되면 오히려 신생팀 창단에도 득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산아이콘스는 안양LG와는 상황이 다르고 구단존립을 위해 불가피한 자구책이란 입장표명이다. 부산아이콘스 측은 "2000년 존폐위기에 놓인 `부산대우로얄즈`를 인수해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4년간 600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푸대접과 적자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전용구장이 없는 형편이고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사용도 자유롭지 못했다. 연간 6-7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지켜 볼 수만은 없다"고 밝히며 "구단이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전 선언의 이유를 밝혔다.


쟁점III. 명분 없는 이전 파트중 일부발췌


팬들의 시각은 `절대반대`부터 `현실적 대안`까지 다양했다. 신일고 교사이자 오랜 축구팬인 신동일씨는 `모두의 잘못`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신동일씨는 "시민구단을 출범한 대구나 대전, 인천의 노력에 절반도 행하지 않는 서울시, 너무 성급한 생각과 판단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프로연맹, 구체적인 발전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거대시장을 차지하겠다고 달려드는 구단 등 전부의 잘못"이라고 성토한 뒤 "도대체 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반면 현실을 직시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학생 서경래씨는 "창단이 최선책이겠지만 불가능한 현실에선 차선책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기존구단의 이전"이라고 말한 뒤 "이후 노력이 중요하다. 숱한 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만큼 프로연맹이나 해당구단의 더 큰 투자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장미와 가시 파트중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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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자료 복사해서 정리를 하니까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나름 이해가 되네(그당시 베스트일레븐 기자칼럼과 서기원옹 칼럼도 정리해서 올리겠음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