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 1939년 뉴욕, 카페 소사이어티

by 케니 posted Dec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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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웨스트 4번가의 카페 소사이어티는 이상한 곳이었다. 어두운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흑인과 백인이 어울려서 술을 마시며 재즈를 들었다. 사장은 신발 외판원 출신의 젊은 사회주의자였고, 누더기 옷을 입고 장갑을 낀 도어맨은 어느 누구의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빤히 쳐다보는 도어맨의 시선을 느끼며 손님은 직접 문을 열어야 했고, 언제나 흑인들이 더 좋은 자리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는 스물세 살의 빌리 홀리데이가 있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면 카페를 채운 이백 명의 손님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누군가 시끄럽게 굴면 빌리 홀리데이는 턱짓으로 그를 쫓아내곤 했다. “네가 별로 재미없어하는 것 같다고 홀리데이 씨가 걱정하시는군. 돈 내고 썩 꺼져”

그러나 그날, 무대에 오른 빌리 홀리데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빌리는 겁쟁이는 아니었다. 슬럼가 출신이었고,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열여섯 살, 엄마는 열세 살이었다. 열 살 때 마흔 살의 백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고, 경찰은 남자를 처벌하는 대신 빌리를 감호소에 넣었다. 간신히 풀려나온 그녀를 이번에는 흑인 남자가 강간했다. 엄마는 창녀였고, 빌리도 창녀가 되었다. 열다섯 살이었다. 매춘 혐의로 다시 감옥에 끌려갔다가, 엄마와 함께 백인 가정에 하녀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공황으로 쫓겨나 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되었다. 다시 창녀가 되기는 싫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댄서 일자리를 얻고 싶었지만 춤을 출 줄은 몰랐다. 힘없이 돌아서는 빌리를 불쌍하게 여긴 피아니스트가 노래라도 한번 불러보라고 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첫 무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윽고 홀 전체가 얼어붙은 듯이 굳었다. 누가 핀이라도 하나 떨어뜨렸다면, 마치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들렸을 거야. 그때 자리에 있었던 어떤 이는 그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빌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얼굴에 억지로 분칠을 하거나 백인들의 야유를 견뎌내야 했었다. 하지만 베니 굿맨이나 듀크 엘링턴과 같은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최고의 여성 보컬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런 빌리 홀리데이가 어린 검둥이 계집아이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빌리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엄마는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말렸다. 너는 죽게 될 거야. 그녀는 받아쳤다. 무덤에 가면 알게 되겠지. 노래를 만들어 빌리에게 가져온 백인들은 원치 않으면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떤 놈들이 내가 부르려고 했던 그 빌어먹을 노래를 가져왔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에 담담하고 퉁명스럽게 썼다.

모든 불이 꺼지고 작은 스포트라이트만이 빌리 홀리데이에게 비춰졌다. 섹스폰 소리가 시작을 알렸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바톤을 넘겨받은 소니 화이트의 피아노 솔로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빌리는 그와 그의 피아노를 좋아했다. 둘은 나중에 약혼했지만 결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피아노 솔로는 너무나 짧았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빌리의 차례였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네. 
잎과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지. 
매달린 검은 몸뚱이는 남부의 바람에 흔들린다네
이상한 열매가 포플러 나무에 열려 있다네.

부드럽고 처연한 노래가 공기를 가득 채우며 울려퍼졌다. 이제 누구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멈출 수 없을 것이었다.

멋진 남부의 전원, 
튀어나온 눈알과 뒤틀린 입술, 달콤하고 상쾌한 목련 향기, 
그리고 갑자기 살을 태우는 냄새,

까마귀가 뜯어먹고 비를 맞고 바람을 빨아들이는, 
나무에서 떨어져서 태양 아래에서 썩는, 
이상하고 슬픈 열매가 있다네.

훗날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잘린 다리를 바라보는 이의 고통과 체념이 있다고 쓰기도 했다. 노래는 서늘했고, 잿빛이었고, 한편으로는 불처럼 뜨거웠다. 좌중은 얼어붙은 듯이 굳었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정적을 깬 것은 한 사내였다. 그는 천천히, 신경질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에서 풀려난 듯 모든 이들의 엄청난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빌리는 울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이상한 열매’를 부를 때면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음정은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빌리 홀리데이는 인사하지 않고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빌리는 이 노래 때문에 두들겨맞고 강간당하고 끌려다니다 매달려서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잊지 못했다. 인간에게 있어 육체적 폭력보다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언젠가는 조지아 출신의 백인 남자가 카페 소사이어티에 빌리 홀리데이를 만나러 찾아오기도 했다. 무대 옆에 앉아서 여유있게 노래를 들은 그는, 냅킨 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 흐물흐물 웃었다. 내가 진짜 ‘이상한 열매’를 보여줄께, 빌리. 그녀는 겁에 질렸지만 울며 주저앉는 대신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둘은 바닥에 뒤엉켜 구르며 미친듯이 싸웠다. 남자는 경비원과 사장의 손에 붙잡혔고, 빌리는 악을 쓰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위대한 빌리 홀리데이는 무대 위뿐 아니라 마룻바닥에서도 비겁하지 않았다.

그날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빌리의 노래는 미국 전역을 돌며 더러운 사진들의 무리와 싸웠다. 사진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열한 사진들이었다. 훗날 <이상한 열매>를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꼽았던 <타임>지는 ‘나치들조차도 아우슈비츠의 기념품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인에 의해 잔혹한 죽임을 당한 흑인들의 시체 사진들은 엽서가 되어 수십만 장씩 팔려나가고 있었다. 사진 속 백인들은 불에 타거나 목이 매달린 흑인들의 시체 앞에서 밝고 화사하게 웃었다. 고작 백 년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KLl-vrH6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