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배설해보는 "내가 대표팀에 빡친 이유"

by 페이지더소울 posted May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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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 대해 "지켜봅시다. 결과가 말해주겠죠." "월드컵에서 잘하면 되죠." 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 없어도 될까?

사실 문제는 박주영이 아니다.
대표팀에 대한 "논란"이 박주영 "까"와 "빠"의 키보드 배틀로 변질되면서 문제의 본질엔 접근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박주영의 대안이 없다는 감독의 말은 사실이다. 그간 대표팀에서 보여준 활약과 전성기의 클라스를 생각하면, 박주영에게 생기는 기대감은 포기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원래는 이만큼 큰 문제가 아니었어야 하는 박주영의 선발을 문제로 만든 것은

바로 홍명보가 세운 원칙이다.
박주영이 그 원칙에 완벽하게 어긋났기 때문이고, 저울질 끝에 결국 스스로 말한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이에 대해 변명만 내세웠기 때문이다. 탈락한 박주호와 이명주가 원칙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 과거한테서 물려받은 업보로, 선수들을 선수 개인보다도 해외파 혹은 유럽파와 국내파라는 파벌로 바라보기 때문인 점도 있겠다.(이 쪽은 나도 자유롭지 못해서..)

사실 홍명보호의 난항은 예견된 일이었다.
가뜩이나 젊고 경험이 적은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역대 최고급 대표팀이니 뭐니 하는데 32국 중 약체다. 뭐 하나 좋은 조건이 없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것이다. 무슨 우리네 사정 모르던 외국인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어디에 뭘 얼마나 바라고, 지키지 못할 원칙을 내세웠는가.

이미 런던 올림픽 때 세워둔 전술과 발 맞춰본 선수들을 자산으로 가진 감독이, 모두가 기대했던 소방수 역할 대신 이것저것 설계해보려다, 일찌감치 실패하고 자기가 들었던 보험으로 회귀한 것. 그 과정에서 안하느니만 못한 짓을 벌이려다가 만든 부작용.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닐까?

올림픽 선수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국제경기 경험이 부족한 선수는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원칙에 부합하는 선수가 제외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가 탈락한 진짜 원인은 그가 뛰는 리그의 수준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러 평가전을 거쳤지만 뻔한 명단이 발표되었기에 그 원인을 탈락한 선수들의 겸손함 아니 경쟁력 부족으로 보는 사람과 인맥으로 보는 사람에 따라 이견이 발생하게 되었다.
설령 그 원인이 감독의 으리 때문이더라도, 부임한지 1년도 안 된 감독에게는 아무래도 실패의 책임을 전부 묻기 어렵다.
그런데 어쩌다가 성공 아니 중박이라도 친다면? 오오 홍명보 오오.

원칙이 무시됨으로써, 아니 원칙이 스스로 세운 사람에 의해 당당하게 부정당함으로써 발생할 파급효과는 지금과 같은 단기간의 헬게이트 오픈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표팀이라고 해서 4년에 1번 축구하면 땡인 집단이 아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대표팀을 꿈꾸는 선수들과 대표팀을 보는 팬들은 자국리그에 대한 자부심이 하락했다. 어쩌구저쩌구 그런 부작용들 덕분에, 나는 그깟 공놀이 대표팀에서 사회의 병폐를 참 많이 본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다"던 원칙은 "살고 보자"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 너무나 당연스럽게 무너졌다. 원칙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이렇게나 가볍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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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사는 포항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