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패충들이 '우리 서울에서 강제로 쫓겨남ㅠㅠ' 계속 이 ㅈㄹ해대는데

by 부루부루부루 posted Dec 22,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3723566


1993년 12월 1일 연합뉴스 보도


길지만 정보의 전달 왜곡 없도록 전문 퍼옴


(서울=연합) '지역연고제의 확립이 프로축구의 살 길이다'

최근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3연속 진출을 계기로 축구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지고 정부가 축구 활성화 및 2002 월드컵 유치활동에 대한 지원을 공약하는 등

축구계 외부에 전례없이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프로축구 6개 구단이 지역연고제 확립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프로구단이 지역연고제를 프로축구 활성화의 최우선과제로 떠올린 것은 출범 12년째를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도 프로축구가 국민일반에 뿌리를 내지리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연고지개념이 확립되지 않은데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로축구는 그동안 수준미달의 경기내용과 팬들의 외면,구단의 무성의 등 활성화를 저해하는 제반 요인들이 지적돼 왔지만 이같은 부정적 요인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6개 구단의 지역연고 미확립으로 귀착된다.

다른 팀에 비해 울산을 연고로 하는 현대와 포항 연고의 포철이 홈경기에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점이나 지역연고가 확실한 프로야구가 축구경기로 엄두도 못낼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연고지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팬들이 축구경기를 외면하기 십상이고 관중이 없는 경기에 선수들의 신명이 날리 없으며 홍보효과도 없이 밑지기만 하는 사업에 구단이 성의를 보이기는 어렵다.

구단 관계자들은 최근 정부와 국민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지금이야 말로 프로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축구와 태권도를 특별관리 종목으로 선정,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자세여서 구단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연고 설정과 전용구장 확보 등에 정부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

구단 사무국장 선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연고지 설정문제는 최근 단장회의에서도 빈번히 거론되고 있어 조만간 마스터 플랜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구단의 연고지 설정방법에 따르면 도시 단위로 연고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와 포철은 우선적으로 울산-경남,포항-경북으로 묶어주고 기업의 지역연고에 따라 대우를 부산-제주로,유공은 인천-경기로 할당하며 LG와 일화를 서울의 강남이나 강북으로 지정한다는 것.

이같은 방안에 대해 LG와 일화도 다른 연고지를 찾고 서울은 연고팀 없이 비워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직 팀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나 연고지 미확립으로 프로야구에 설움을 당해 온 각 구단 관계자들은 연고지 할당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문제는 각 연고지역의 인구분포 및 해당구단과의 정서적 밀착관계를 따져 가급적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나 일부 구단에서는 시작단계에서 다소의 괴리현상이 나타나더라도 활발한 홍보와 팬서비스 등 구단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오래지 않아 구단과 연고팬의 관계를 긴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분히 인위적인 프로구단의 연고지 설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작단계에서 정부의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축구활성화를 위해 소매를 걷어 올리겠다면 프로구단과 해당 시.도를 행정적으로 묶어 주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기존 구단마저 팀운영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추어 새로운 구단의 자발적인 창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에서 기존팀의 연고 할당에서 제외된 강원도와 호남,충청지역에 팀을 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금융지원과 세제혜택 등 창단여건을 거들 수 있는 정부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프로구단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비록 소액이라도 축구 발전기금을 각 시.도에 지방교부금 형식으로 분배한 뒤 시.도가 예산지원을 통해 구단과 연고를 맺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가 예산사업의 우선순위에 밀려 축구발전기금을 국고에서 지출할 수 없다면 축구협회나 프로구단의 갹출로 충당할 수도 있다"면서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시.도 관계자들에게 특정구단과 무언가 인연이 있다는 '연고의식'을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 점에서는 정부가 나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 지역 연고제의 필요성은 연맹, 청와대도 아닌 구단 관계자들이 스스로 느끼고 추진하던 상태(단장회의에서도 논의되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

- 하지만 구단 힘으로 지역을 연고로 잡기엔 역부족해, 월드컵 3회 연속 진출 +  2002년 월드컵 유치 노력 등의 버프에 힘 입어 청와대의 힘을 빌리기로 함

- 이 당시에도 '연고'라는 표현을 쓰나, '연고지개념이 확립되지 않은데 기인한 것'이라는 단락과 '6개팀 모두 연고가 없다'에서 우리가 지금 여기는 지역 연고와는 다른 개념임을 볼 수 있다 (home보다는 주 경기 장소로 볼 수 있음)

- '울산을 연고로 하는 현대와 포항을 연고의 포철' 부분에서 지금의 연고와는 달라도, 현 울산과 포항은 지금 연고지에서 꾸준히 경기를 해온 상태임을 알 수 있음

- 중간에 대략적으로 연고지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프로구단의 연고지 설정 방법에 따르면'이란 대목에서 이것은 각 구단 관계자 및 단장들이 짜놓은 설정임을 알 수 있음

더불어 LG와 일화를 강남, 강북에 나눠서 배정하잔 의견과 이 둘도 그냥 서울을 비워놓고 다른데로 가야 한다는 2가지 의견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 기사 말미 관계자의 말 : 정부가 나서서 시, 도 관계자들과 프로 구단을 이어주어야 한다


여기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 94년부터 축협, 연맹 주도로 지역 연고제가 진행되어 결국 강제로 쫓겨났다고 하는데, 93년 말 보도에서 구단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지역 연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음

(더불어 LG가 서울 외 지역으로 가는 것도 구단들 간의 플랜에 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

그리고 지역 연고제 정착에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함


참고로 왜 구단 주도로 이루어졌느냐? 이 당시엔 지금의 연맹이 존재하지 않았고, 1994년에서야 지금의 연맹이 구축됨

(당시 개축 구단 관리는 89년부터 협회에 소속된 분과위원회에서 하고 있었음)


따라서 지역 연고제의 발단은 연맹이 아닌 구단들이었고, 다만 지역 연고를 구단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분과위원회, 즉 협회가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21600329119001&ed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4-12-16&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285&publishType=00010


1994년 12월 16일자 경향신문 보도


이 기사 내용을 간단히 추리자면(복사가 안 됨)


- 95년부터 지역 연고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기로 계획함

(1995년부터 우리나라에 지방 자치제가 도입되면서 더불어 진행되었다고 나와있음)


- 95년부터 참가한 전남을 포함한 5개 구단은 연고지를 확정했지만, 유공 일화 lG 3팀은 연고지를 못 정한 상태


- 이 3개 구단은 연고지를 최종 확정키로 하였고, 유공은 부천, 일화는 성남, LG는 수원과 서울을 검토 중

(수원이 후보지인 이유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41500329119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4-15&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057&publishType=00010)


- 하지만 계속 미확정할 경우 20일 이사회에서 강제로 연고지를 배정키로 함


(이후 기사는 전용구장 건립, 주주 발행, 연고지명 유니폼 부착 등등의 내용)


=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연고'의 개념이 도입되던 시기가 바로 94~95년으로 이때도 동대문에 있던 3개 팀은 아직도 연고지를 확정하지 못 한 상태였다

다만 연맹에서 강제로 배정한 것이 아닌 유예기간을 주고 그 때까지 완료 못 할시 강제 배정한다고 나와 있음



이 기사들을 토대로 북패충들의 주장을 반박하자면



동대문 시절에 LG는 이미 '서울팀'이란 연고 의식이 있었다 

- 당시에도 '연고'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연고지 정착이 확실히 되어 있지 않다는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연고'와는 다른 의미이며, 94년과 95년 지역 연고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home'으로서의 '연고'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음

따라서 LG가 동대문에 있던 93년, 94년 당시 '연고'를 지금의 '연고'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아주 기초적인 오류



지역 연고제 정착과 서울 공동화는 2002년 월드컵 성공적 개최를 위해 축구붐을 일으킬 필요를 느낀 정부와 연맹 주도로 시작 되었다

- 현재의 '연고' 개념이 필요하단 것은 구단 관계자들이 93년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사안으로,(혹은 그 이전일 수도 있음) 계획까지 나온 것으로 보면 구단들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음 하지만 지역 연고를 잡는데 구단만의 힘으론 역부족이므로 연맹이나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단 인식 또한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리고 구단들 간의 논의에서 서울을 비우자는 논의가 있었음

즉, 지역 연고제 정착은 진즉에 구단들이 먼저 꺼낸 문제였고, 구단들 스스로 서울을 비워놓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음

하지만 구단들의 의견과 힘을 모을 연맹이 설립되지 않아 협회가 이 문제에 나섰고, 차후 1994년 7월 30일 연맹이 설립되면서 이 책임을 이어가게 됨

또한 연맹이 독단적으로 서울 공동화를 강제로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연맹 설립 당시 7개 단장이 10명의 대의원을 구성하고 있었음(지금도 연맹 이사회에 구단 단장들이 참가하고 있음)


더불어 서울에 삼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울을 비워놓은 거란 북패충 주장들도 개소리ㅇㅇ


결국 북패충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당시 자료에서 인용하는 '연고 의식'은 지금의 '연고'와 다른 개념임

(물론 당시 광역 연고 등이 시행되었지만, 93년 기사를 참조해보면 역시나 지금의 '연고'와 동일시하기엔 부족함)


또한 지역 연고제는 구단 스스로가 필요해서 추진한 것이었고, 이때 서울을 비워두는 것 또한 이미 93년에 구단 사이에서 논의된 이야기였음 

하지만 지역과 연고를 맺기에는 구단의 힘만으론 역부족이었음 그래서 당시 개축 구단 관리를 맡은 협회 분과위원회가 이끌다가 연맹이 설립된 94년 7월 30일 이후 연맹이 이를 맡게 되었고


결국 구단들 스스로 서울을 비울 생각도 하였고, 이걸 연맹이 주도한 것도 구단들이 자기들끼리는 힘드니까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고 ㅇㅇ


거기다 단장들이 대의원으로 있는 연맹이 강제로 내쫓았다? 당시 동대문 3개 팀 단장들이 빙다리 핫바지도 아닌데 이게 가능한가 모르겠네 ㅇㅇ


그러니 '강제로 쫓겨났다' 이 말은 성립될 수가 없음



부분적인 기사들이긴 하지만, 북패충들의 논리에 반박하기 충분하다 싶어서 퍼온 기사들임 ㅇㅇ


다만 95년 1월 연맹 이사회에서 '서울을 비우기로 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 1월 이사회에 관한 내용 있으면 댓글 좀 달아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1300289119009&ed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2-13&officeId=00028&pageNo=19&printNo=2423&publishType=00010


그리고 혹여 부족한 점들이 있으면 댓글 부탁 좀 ㅇㅇ

Who's 부루부루부루

?

지킬 건 지키는 개발공의 위아더 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