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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년 전이다. 내가 갓 축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군산에 내려가 살 때다. 전주 왔다 가는 길에, 전주역으로 가기 위해 동산역에서 일단 기차를 타야했다. 동산역 맞은편 월드컵 경기장에 앉아서 발리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득실이나 한 점 늘리고 가려고 발리를 깎아 달라고 부탁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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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발리슛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서 넣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깍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골 넣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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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넣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넣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발리슛이란 제대로 차 넣어야지, 헛발질해서야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공을 숫제 스터드 밑에 두고 태연스럽게 세레모니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크로스 궤적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차서 넣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발리골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축구를 해 가지고 축구가 될 턱이 없다. 관중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연봉만 되게 부른다. 다득점(多得點)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전주성 지붕 끝자락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자글자글한 주름살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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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에 와서 발리슛 직캠 영상을 내놨더니 유저들은 이쁘게 깎아넣었다고 야단이다. 주멘이 깎은 발리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저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슛이 너무 강하면 활공을 잘하고 난쏘공이 되기 쉽상이며, 슛이 너무 약하면 소녀슛 타이틀을 달기가 쉽상이란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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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응원가에 백네임 마킹 한 벌 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전주를 향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전주성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國同李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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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신임 감독이 포항을 패고 있었다. 전에 발리슛으로 울산, 수원을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원더골에 환호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경쾌한 슈팅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발리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문 : 방망이 깎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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