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장을 대표하는 축구인은 누구입니까?

by 완소인유 posted Nov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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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 창단 혹은 창단 후 2~3년 안에 팬이 된 경우,

아마도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5 삼성하우젠 K-리그 챔피언결정전.

 

그 경기를 직접 봤거나, 나처럼 KBS 중계 엔딩의 '1-5'라는 스코어가 뇌리에 깊게 박혔거나.

혹은 비상飛上을 통해 보았거나.

 

그리고 그런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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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발걸음만 보아도 그가 이 경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천수.

애증? 레전드? 풍운아? 문제아? 천재?

유럽파? K리그 사기유닛?

 

은근히 인천은 빼어난 축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만 10명은 될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당장 2010년대에 축구를 본 사람일지라도 알 수 있는 김정우, 조용형(은 남아공 월드컵 이후로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아쉽다).

조금 더 멀리 가본다면 김남일, 박용호, 최태욱,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양상민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이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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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을용 청주대 코치가 차려는 것을 굳이 자기가 차겠다고 했던 모습을. 각도 왼발 각이었는데.

 

스위스와의 경기 후에 그라운드에 엎드려 우는 이천수의 모습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물론 동년 10월에 문학경기장에서 주심에게 막말을 했던 사람 또한 그였다.

 

이적 추진, 울산 잔류, 페예노르트, 수원, 전남, 임의탈퇴, 폭행, 오미야, 사우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의 삶을 덧칠해나갔다.

선수로 활발히 그라운드를 누벼야함에도 그러지를 못했다.

본인도 인정했듯, 본인의 실이 컸다. 그러나 세상은 천재(라고 여겨지는 이)를 언제나 시샘하듯이 그도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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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입은 검푸른 고향 팀의 유니폼. 너무 잘 어울려서 나도 놀랐다.

 

월드컵 3인방의 합류 때문이 아닌, 우리 지역의,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선수의 입단이었기에  정말 반가웠다.

김남일 또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떠났기에 고마움을 가지고 있지만.

실력에 대해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1년을 쉬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있었고, 본인은 또 그것을 다 감내하며 스스로 풀기 위해 축구 대신 다른 것들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축구 인생을 대변하듯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뚜렷하게 기억한다.

2013 시즌 인천이 잘 나가서도 있었지만 그가 드리블을 하거나 볼 터치를 하면 더욱 커지곤 했던 관중들의 함성.

코너킥을 차러 왔을 때 열렬한 환호에 박수나 손을 드는 것으로 화답하던 그의 모습.

억울한 파울이다 싶을 때 항의하는 것이 '악동'이 아닌 '고참'으로서의 어필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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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를 누볐던 저 유니폼이 사실은 꽤나 잘 어울리지만, 사람에게 고향만큼 정겨운 것이 또 있을까.

 

이제는 볼 수 없는 저 모습이 당연히, 물론 그리워지겠지.

나도 욕을 했었고, 혀를 끌끌 찼었고, 준우승을 안길 땐 악마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그였는데.

이천수다운 마지막을 남기는 것 같아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당신의 고장을 대표하는 축구인은 누구입니까?

 

이제 주저 않고 이천수라고 말하겠다.

다른 수식어가 아닌 '인천을 대표하는 축구인' 이천수의 은퇴를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