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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oa_cfc.png

저번편이 지루하게도 역사편이라서 솔직히 나도 짜증났긴 했지만 이제부턴 두팀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겠음.


01. IL Grifone Genoa 


제노아 CFC의 경우는 의외로 많이 관심을 안갖기는 하지만 세리에를 보는사람은 알다시피 전통있는 명문클럽임.

1893년에 창단한 이팀은 리그 9회 우승경험이 있고 코파 이탈리아도 1회 우승했고 솔직히 이것외에도 검색해서

보면 지금은 통폐합된 대회들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적이 있는 클럼임.


이 클럽은 원래 초창기엔 축구만의 클럽이 아닌 크리켓이나 육상등 잉글랜드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창단된

클럽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의 스포츠단이였는데, 후에 1897년 4월에 이 클럽의 축구종목이 조금더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시기에 축구라는 종목이 뚜렷하게 성립된 클럽은 토리노에 있는 4개의 클럽정도였음.

게다가 영국인들이 세운 클럽이기에 영국인들만을 위한 클럽으로써 이탈리아 인들은 접근하기 힘든 그런 운영

을 하고있었지만 클럽이 축구를 좀더 체계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아 인들의 접근도 허용하게 됐음


후에 이탈리아에 이탈리아 풋볼 챔피언쉽 대회가 생기면서 자부심 높은 이 클럽또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때 클럽의 명칭을 Genoa Cricket & Football Club으로 바꾸게 되고 이때부터 원래 초창기때 부터 쓰던

잉글랜드의 국기를 상징하던 지금의 잉글랜드 대표팀과 같은 백색 유니폼에서 좀더 진화하게 된 유니폼을

내놓게 되는데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의 세로줄무늬를 포함하면서 마치 2005년 울산이 쓰던 유니폼과 같은

스타일을 내놓게 됨. 제노아가 현재의 붉은색과 적색(Rossoblu)를 정착시킨건 1901년 부터시작됐음

물론 이탈리아 풋볼 챔피언쉽 대회에 참가한 제노아는 그야말로 상대가 없었고 그들은

이탈리아 내에서 1899년부터 1904년까지는 이탈리아에서 큰 목표와 커다란 자부심을 갖는 클럽이였음.

하지만 1905년부터 유벤투스나 밀란등에게 잇달아 왕좌를 뺏기면서 제노아의 위기가 시작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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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이런유니폼이였음.. 초창기에서 좀 지난 제노아 유니폼이... 뭐 어차피 초창기엔

색상이나 스타일만 틀리고 옷 디자인은 다 똑같았지만..


Genoa_1893.png

1898년에 이탈리아 챔피언쉽 대회에 출전해서 최초의 우승을 가져왔던 시기의 선수단

Genoa_1899.png

이후 1899년에 팀에 2연속 우승을 가져왔던 제노아 선수단


이후 1908년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체육협회측의 '무분별한 외국인들을 사용하는것을 금지하라'는 항의를 받아

들이면서 창단부터 줄곧 영국인들만을 이끌고 대회를 참가해온 제노아는 큰 타격을 입게되는데 후에 여러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제노아 클럽은 상처입은채로 팀을 재편해야되는 상횡이 발생하게 됨. 하지만 끝없이 추락할것

같던 제노아에 한사람이 등장하는데 이사람이 바로 제노아 올드 팬들에게 유명한 윌리엄 가버트(William Garbutt)임. 

윌리엄 가버트는 이탈리아 축구역사상 최초의 전문적인 축구 감독이였는데 그는 전문적이지 않던 선수들에게 

체력훈련과 전술훈련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양한 축구스타일을 전수하였음 가버트는 또한 경기장 벤치에서 경기중에

파이프 담배를 피면서 전술을 지시하고 작전을 짜는모습을 자주보여서 제노아 선수들이나 팬들은 그를 '미스터'라

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음. 그리고 가버트 감독이 부임한 이후 1914-15 시즌에 이탈리아 북부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이탈리아 전국리그는 개최되지 않았는데 1차대전으로 인해 이탈리아 남부가 리그를 포기했기

때문이였음. 그렇게 이탈리아 전체가 전쟁분위기에 빠져들고 이후 1918년에야 비로소 제노아는 1914-15시즌 우승

축하파티를 할수있었지만 이건 축하파티이자 장례식같은 분위기로 진행됐는데 이유는 그 당시 우승주역이였던

루이지 페라리스, 아돌포 그레네코, 카를로 마사시, 클라우디오 카사노바, 알베르토 수소네등이 전쟁에 휘말려

군대에서 목숨을 잃었고 같은해에 제노아 클럽의 축구문화를 주도하고 체계화 시켰던 영국인 제임스 리차드슨

스펜슬리또한 독일에서 사망했음. 하지만 제노아는 가버트의 지휘아래 다시한번 뭉치게 되고 클럽이 전쟁전보다

많이 약화되었지만 가버트의 제노아는 여전히 북부리그 유력한 우승후보였고 1922-23, 1923-24 시즌을 연달아

우승하면서 제노아의 위용을 다시한번 떨치게 되었는데 23-24시즌에 스쿠데토가 최초로 생겼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후 제노아는 우승을 하지못하고 유일하게 높은 성적을 거둔건 1927-28시즌 제노아에서 20경기를

출장해서 27골을 넣던 펠리체 레브라토가 이끄는 선수단이 토리노에게 패배하여 준우승한게 이후 최고기록이였음


140px-Scudetto.svg.png

요게 최초로 달리게 된 시기가 23-24 시즌 이후부터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거 생기자마자

제노아는 단 한번도 저걸 오바로크 칠 상황은 없었음...


Gianluca-Vialli-001.jpg

근데 삼돌이는 여러번 달았더만..


william-garbutt.jpg

이냥반이 제노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탈리아 최초의 전문 감독 '미스터' 윌리엄 가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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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내미랑 축구하고 있는 미스터 윌리엄 가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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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윌리엄 가버트가 제노아와 마지막으로 함께 했을때의 사진이라는데.. 가운데가 아무래도 가버트 인거같네..


GenoaCFC1924season.jpg

1923년 마지막 영광의 단물을 빨아먹은 시기의 제노아 선수단


02. 과거의 영광


1차대전 종전이후 승전국 이탈리아는 전세계적으로 벌어진 경제공황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국내경제가 침체되며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는 승전국임에도 그어떠한 이득조차 얻어오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그때

파시스트 주의를 표방하며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내세우며 등장한 무솔리니의 등장이후 모든게 뒤바뀌어버리는데

이때 제노아도 영국적인 클럽명칭을 파시스트 정권의 요구로 '이탈리아 적'인 명칭 Genoa 1893 Circolo Del Calsio

로 변경하게 됐는데 이시기 제노아는 유러피언 컵의 전신이였던 미트로파 컵 8강에서 라피트 비엔나를 만나 패하면서

탈락하게 되었고 또한 29-30시즌엔 암브로시아나 인테르(Ambrosiana-Inter)로 팀 명칭을 변경당한 인테르에게 밀려 

마지막 우승을 거둔후 가장 최고의 성적인 2위를 차지함 이후에 제노아는 들쭉날쑥한 성적으로 1933-34 시즌엔

세리에 B로 강등당하기도 하였지만 비토리오 바로파덕분에 다시한번 바로 승격을 하는 위험천만한 행보를 이어가는데

후에 제노아의 위대한 영광을 부르짖으며 등장한 1936년에 등장한 제노아 클럽의 회장 줄리오 클리올로의 등장으로

코파 이탈리아 컵을 우승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또다시 벌어진 2차대전의 여파로 이탈리아의 모든 클럽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클럽들의 자구책과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한번 일어서지만 제노아는 그 여파를 쉽게 못벗어남


599646167Genoa Cricket and Football Club.jpg

무쏠리니 냥반때문에(?) 매우 좋지않은 상황을 좋지않은때에 맞이한 제노아의 엠블럼

환관이라니!!!


그러다가 2차세계대전이 종전하면서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팀의 명칭을 잃었던 클럽들이 원래 명칭을 회복하고

제노아 또한 다시한번 제노아 CFC로 복귀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돌아온건 명칭과 과거의 영광뿐이였음.

이후 계속 죽쑤던 이 불쌍한(?)클럽 제노아에 아틀레틱 빌바오로 떠났던 가버트와 또 한명의 제노아와 영광을 함께

누렸던 오타비오 바르비에리가 제노아 클럽의 경영진으로 복귀하면서 그동안 과거의 영광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제노아를 떠났던 수많은 축구팬들은 이들의 복귀로 다시한번 제노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46년 두개의 클럽의

연합체로 구성된 숙명의 라이벌 삼프도리아가 창단되고 1900년대 초부터 제노아만의 전유물이였던 홈 구장

루이지 페라리스 스타디오를 삼프도리아와 함께 공유하게 되면서 숙적관계는 더욱더 심해졌고 그로 인해 영광의 시절

이후 멀어졌던 제노아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을 다시한번 끌어모으게 됨. 


primasamp.jpg

1946년 창단한 U.C 삼프도리아는 제노아가 쓰던 홈구장 루이지 페라리스 스타디오에서 앙숙과의 동거를 하게됨


그리고 다시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던 제노아는 59-60 시즌에 강등당하면서 체면을 다시 구겼지만 이후 60-61시즌에

세리에 B에서 우승과 함께 1부로 승격했음. 그리고 62년과 64년엔 유럽 클럽 대항전 성격을 가지고 있는 코파 델레

알피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다시한번 제노아는 영광의 시대가 다시한번 도래할거라는 기대를 가졌으나

그해 리그에서 강등당했는데, 제노아는 매 시즌마다 감독교체등의 여파등으로 인해 이전보다는 빠르게 승격하지

못한채 1970년엔 세리에 C까지 강등되는 클럽 역사상 최악의 수모까지 겪게되는데 이후에 73-74시즌에 세리에

A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금방 또 강등되면서 70년대의 대부분을 세리에 B와 함께했음. 그러다 2년후에 다시

승격하고 그 이후에 78-79시즌엔 로베르토 로사토나 로베르토 푸르초, 브루노 콘티같은 스타선수를 보유하고도

피오렌티나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무득점으로 비기면서 득실점에서 1점이 부족해서 강등당했음.


그렇게 강등된 제노아는 이전과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 강등과 함께 제노아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잃었는데

가장 아쉬웠던 선수는 로베르토 푸르초 였음. 이 로베르토 푸르초는 제노아의 강등이후 AS로마로 이적해서

로마선수로 뛰는 기간 로마의 스타플레이어 대접을 톡톡이 받으며 로마의 늑대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렇게 스타플레이어들 대거로 잃어버린 제노아는 2시즌동안 세리에 B에서 중위권을 지키다가

도박 스캔들로 강등당한 밀란에 이어 2위로 승격하게 됐는데 그 다음해 1부에서 제노아는 하위권을 맴돌다가

강등위기를 맞이한 시기에서 같은 밀란과 강등경쟁을 펼치던 중 마지막 경기였던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마리오 파체다의 결승골로 2-1로 나폴리에 승리하면서 밀란에 승점 1점차로 밀란을 떨어트리고 살아남으면서

영광을 잊고 그냥 더이상 강등의 치욕만 당하지 않길 바라던 제노아팬들은 잔류의 기쁨이 넘쳐서

자신들에게 패배했던 나폴리에게 우호적인 행동을 취하게 됨. 이후 제노아의 팬들은 아직도 나폴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04. 짧디 짧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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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스피넬리 이냥반은 리보르노 구단주인가로 있는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Bagnoli_Osvaldo.jpg

이냥반이 제노아의 짧은봄을 끌고온 오스발도 바뇰리 감독


이후 1980년대에 강등을 당한 제노아는 칼라브리아 태생의 백만장자 알도 스피넬리가 1985년 구단주에 오르면서

팀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주력했고 알도 스파넬리의 주도아래 팀을 전체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결국 88-89 시즌에 AS바리를 밀어내고 세리에 B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승격을 하게됨.

그렇게 승격이란 첫단추를 엮은 알도 스파넬리는 시모니 감독을 경질시키고 그자리에 약체팀 헬라스 베로나를

이끌면서 세리에 B의 우승까지 차지한 경험이 있던 오스발도 바뇰리 감독을 제노아의 감독으로 임명하였고

오스발도 바뇰리는 알도 스피넬리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90-91시즌에 팀의 스타플레이어 카를로스 아길레라

와 토마시 스쿠라비등 여러 재능있는 선수들로 팀을 꾸려서 세리에 A 4위를 차지하였는데 이 시즌동안

바뇰리 감독이 이끌던 제노아는 연고 라이벌 삼프도리아를 격파했고 유벤투스, 인테르, 밀란, 로마, 나폴리,

피오렌티나등을 상대로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 그리고 그해에 성과로 UEFA컵 참가자격을 얻게되었고 UEFA컵 8강

전에서 리버풀을 만나서 홈경기와 원정에서 모두 이기면서 최초로 안필드에서 이긴 이탈리아 클럽이 됨.


하지만 이후 팀의 영광을 이끌어온 오스발도 바뇰리 감독이 투병중이던 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감독직을

사임하였고 그로 인해 팀 전체가 중심을 잡지못하였고 또한명의 후원자였던 구단주 알도 스파넬리는 무리한

투자로 인한 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클럽의 운영방침을 스타플레이어를 팔아서 얻는 수익으로 구단을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과거엔 사람들도 몰랐던 제노아의 팬들조차 관심을 갖지않았던 새로운 원석들이 발굴됨

대표적으로 팀의 운영을 위해서 어쩔수 없이 팔게된 스타플레이어 카를로스 아길레라를 판 돈으로 급하게

요미우리 베르디에서 영입한 미우라 카즈요시의 영입으로 엄청난 거액의 '재팬 머니'가 흘러들어오게 됨

하지만 이후 94-95시즌 제노아는 결국 피해왔던 세리에 B로 강등을 당하게 됐는데, 세리에 B에 있는 기간

동안 제노아는 그 기간 앵글로-이탈리아 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제노아 팬들은 자그만한 희망을

꿈꾸게 되었지만 제노아의 부활을 함께하던 알도 스피넬리가 제노아를 매각하고 알레산드리아로 간 이후

잦은 경영자 교체및 클럽의 부채문제등이 어우러져 침체기를 겪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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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아에서 뛰던 미우라 카즈요시 (20경기 1골)

미우라의 영입은 그당시 제노아팬들의 시각에선 실력보단 상업적인 영입으로

바라봤으며 또한 그러한 시각은 감독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더군다나 미우라는

밀란과의 리그개막전에서 비골골절로 부상의 불운으로 제기량을 펼치지못함


05. 제노아의 팬덤

제노아의 울트라들은 역시나 숙적인 삼프도리아의 울트라들을 싫어하지만 나폴리의 울트라들과는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하지만 제노아 울트라들이 삼프도리아 못지않게 싫어하는 쪽이 밀란 울트라들인데

이유인즉슨 1995년 1월에 밀란 울트라스의 시모네 바르발리아가 경기 종료후에 집으로 돌아가던 제노아의

빈센쵸 스파뇰로를 칼로 찔러 죽이면서 두 팬들간의 충돌이 벌어졌고 그 사건 이후 서로 앙숙관계가 유지되었음.

토리노와도 08-09시즌때 토리노가 강등당하면서 토리노 울트라들간에 반 제노아 성향이 생기면서 사이가 안좋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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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아팬들과 나폴리팬들이 함께 행진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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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인가? 제노아 승격때 사진인데, 뭐 저정도로 기쁘긴 할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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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아 울트라들의 제노아와 나폴리의 프랜드쉽 30주년 기념 퍼포먼스


AC_Milan-logo.gif


하지만 밀란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Scontri_ultras.jpg


요렇게 변신함!


Vincenzo Spagnolo memorial.jpeg

95년 1월에 밀란 울트라스 시모네 바르발리아에게 살해당한 빈센쵸 스파뇰로를 추모하는 장면




[다음편은 삼돌이 얘기임]



ps.

내가 이걸 아침 8시부터 쓰고있었는데.. 12시 30분 가까이까지 쓰다가 끝냈는데

분명히 장시간 쓰고있으면 손목이나 손이아파야되는데 왜 무릎이 아프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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