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더러워지는 오해 하나를 풀어보자.

by 꽁사꽁사* posted Jan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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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news.nate.com/spopub/cartoon



여기서 촹기리의 의견은 새로운 더비가 하나 생겨났고 그 더비는 윤성효가 계기가 되어서 생겨난 '부산-수원 더비', 통칭 ㅅㅂ 더비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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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 하시는 겁니까? ㅅㅂ 더비라니요? 그건 어느 동네 더비입니까?





 댁들은 모르는 부산과 수원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의 시작은 현재 21세기가 아니라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죠. 현재 부산에는 부산 아이파크라고 하는 현대 산업 건설의 기업 구단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 부산 아이파크가 생기기 전 부산에는 대우 로얄즈-K리그 식 리즈 시절를 말하는 로얄즈 시절의 그 대우 로얄즈-라는 구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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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 부산 갈매기 中



대우 로얄즈는 1983년 프로 축구 첫 출범 시 있던 8개의 팀 중 하나입니다. 대우 그룹을 모기업으로 매 홈경기 때 마다 냉장고, VTR, 세탁기 등을 경품으로 걸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1983년 8승 4무 2패, 승점 29점을 기록하며 프로 축구 첫 우승을 차지했죠. 그리고 1986년 현 AFC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출전해 한국 축구 최초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 됩니다. (그 이전까지의 기록은 1969년 중앙정보부 산하의 양지 축구단의 준우승 기록이 전부입니다.) 현재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국 프로 축구 팀들이 좋은 성적을 내보내지만 그 처음엔 대우 로얄즈가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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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나 이상한 게 끼어져있는 느낌이 드는데 생략하자. 




대우 로얄즈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다음해 2월 아프로-아시아 클럽챔피언쉽에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 아프리카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그 아프로-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은 도요타컵과 통합되어 클럽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로-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 우승한 해 대우 로얄즈는 리그에서 16승 14무 2패를 기록. 2번째 K리그 우승컵을 들게됩니다. 그리고 1991년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인 21경기 연속 무패 기록까지 세우고요.


물론 1992년부터 1996년 부터는 최하위권에서 놀고 병신같은 성적을 내고 선수들 이적시켜버리고 흑역사도 있고 그랬지만 1995년 K리그 연고지 정착제가 도입된 후부터 부산 대우 로얄즈로 개명하고 연고지를 부산으로 지정합니다. 그리고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는 리그 우승, 아디다스 컵, 프로스펙스 컵 우승을 하며 프로 연맹 주관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K리그 최초의 리그 4회 우승의 업적도 달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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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부산 아이파크 앰블럼의 별 4개도 그 시절에 얻은 별 4개죠.




그리고 1999년, 이동국, 안정환, 고종수 트로이카의 등장과 이슈 메이커 수원 삼성의 등장으로 K리그가 미친듯이 발전하고 있던 그 시점. 수원은 2위 부천과 승점 12점 차로 정규리그 1위를 일찌감치 해놓고 챔피언 결정전에 아무나 올라오길 바라고 있었죠. 내심 수원팬들은 2위인 부천이 올라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온 건 당시 모 기업 부도와 감독 사임, 감독 대행 사망 등으로 풍비박산 나버린 17승 15패의 4위, 부산 대우 로얄즈였습니다. 우승이 절실한 부산과 첫 우승을 노리고 있던 수원. 아마 K리그 사상 가장 피터지는, 결국 피터져버린 챔피언 결정전이 되어버린 수원과 부산의 첫 경기가 열린 곳은 현 POP의 전신인 로얄 패밀리가 있었던 구덕 운동장이었습니다. 그 해 수원은 구덕에서 치뤄진 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 했고 그래서 그런가 그 날 경기도 정말 팽팽했죠.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하고 부산은 수원에게 2점을 내주고 1 - 2로 패하게 됩니다. 그 해 리그 첫 구덕 승리를 챔피언 결정전에서 얻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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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구덕 로얄 패밀리의 응원 모습. 




그리고 1999년 10월 31일 수원 종합 운동장에서 운명의 2차전이 벌어집니다. 어떻게든 패할 수 없는 부산은 수원을 상대로 선취골을 집어넣고 무작정 잠급니다. 하지만 수원의 프리킥이 부산 선수의 손에 맞/고 들어가 자책골이 되어버리고 90분 경기는 1 - 1로종료됩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도 공방전을 이어갔죠. 근데 이 때 축구에는 골든 볼 제도가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을 승리로 이끈 그 골든 볼 제도 때문에 연장전에 누구든 한 골만 더 넣으면 경기는 끝난다인데.. 하필이면 그 한 골이 수원의 골이었고 아마 K리그 사상 최악의 오심의 골이었던 거죠.



연장 전반 9분, 수원의 샤샤는 왼손으로 공을 골대안으로 밀어넣었고 순바오제 주심은 그 핸드볼 골을 골로 인정합니다. 샤샤의 골 세레모니와 함께 축포를 울리며 경기는 끝났고 부산 선수들은 순바오제 주심에게 항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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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개새끼야 졸라 고맙다.



그 후 부산은 한도 끝도 없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현대 산업 건설에 인수되고 한도 끝도 없이 밑바닥을 기었는데 수원은 우승도 해먹고, 모 기업 덕분에 현질도 잔뜩잔뜩하고 레알 수원이니 뭐니 하면서 후빨도 해주는 사람도 차고 넘치고 사고 쳐도 뭐라 하는 새끼들 하나도 없고 그리고 5년 넘게 부산은 수원을 못 이기고.



뭐 그런 이유 때문에 부산은 수원을 졸라 싫어합니다. 아마 그건 1999년부터 시작했을 거고,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거고, 아마 미래에도 그렇게 될 거에요. 당시 영상이 없는 탓에 우리한테는 거의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고 그 때의 분노는 대를 이어 신규 유입 종자들한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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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보다 뒤에서 웃고 있는 단장새끼 목을 따버리고 싶다



자, 근데 2013 시즌 부산 감독으로 세제믿윤이 내정되었습니다. 부산 팬들은 화가 났어요. 실패한 감독을 데려온 게 아니라 수원 레전드 출신에, 수원 감독까지 한 사람을 데려왔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죠. 근데 일단은 감독이잖아요. 그래서 그냥 조용히 닥치고 있었어요. 프론트를 향해 분노의 칼을 갈면서 언젠간 우리가 그 웃고있는 단장씹쌕을 향해 칼빵을 날리겠다라는 결심을 품으면서요. 




결론 : 우리는 수원과 14년 전 부터 적이었으니 함부로 역사 공정 하지 마라.




+) 그래서 말하는 건데, 씨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저딴 쓰레기같은 만화 만들지 말란 말이야. 부산에서 FC 서울은 그냥 그러려니해도 수원은 씨발 3대를 멸해야할 종족들이라고 이 그지같은 새끼들아. 알면서 설치면 그냥 미친갑다 이러면 되지 모르면서 설치니까 더 빡치냐 안 빡치냐 ㅅㅂ. 개리그에 역사와 전통이 없긴 개뿔 졸라 많아 이 씨발년들아 니들이 관심이 없고 신경을 안 쓰는 거지 개새끼들아. 




-출처 : 풋케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