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주의에 대한 이야기 1화 인종차별편 上

by 튀김왕정지혁 posted Mar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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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차별이라는건 참 다양한 장소에서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자주 발생하는 문제거리지.

대표적인게 인종차별인데, 하지만 인종차별만 유별난게 아니라 이 차별은 종교, 성별, 나이, 정치, 경제,

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서 차별이 드러나는 문제야.


세계적으로 이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많았지만 왜 현대화 되고 고도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시대에도 이러한 차별은 존재하는걸까?


이 글은 나의 개인적 의견을 바탕으로 쓰는 칼럼이기에 만약에 자신의 의견은 이와 다르다 하는사람은

거리낌없이 말해줘.



인종적 차별의 역사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표적인것이 인종차별이지. 이 인종차별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문제는 고대로 부터 이어져온 문제야. 다만 이 인종차별이 가장 많이 부각되는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부터 시작이 됐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훌륭한 과학적 이론이었지만 문제는 이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인종을 인간과 진화하지 못한 짐승들로 구분하면서 부터 부각되었지. 대표적인게 이 찰스 다윈의

사촌인 Francis Galton이 런던에서 본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범죄율을 보고

이들을 격리시켜서 이들의 유전적 성질이 사회에 문제거리를 퍼트리는걸 막자라는 이론에서 시작돼.

이후 사회진화론이나 골상학등이 등장하면서 이런 인종적 차별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어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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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Robert Darwin 1809.2.12 ~ 1882.4.19

찰스다윈은 알았을까? 자신이 연구한 이론이 이렇게 왜곡되어 남들의 정복도구로

사용되었다는걸..)



francis-galton-3-sized.jpg 

(Francis Galton 1822-1911

위 사진은 1850년대 찍은 사진)


근데 이 Francis Galton 이 있던시기를 보면 한가지 떠오르는게 있지 이 시기는 서구열강들 한창

활발한 식민지 사업을 벌이는 시기라는거. 그시기의 열강들은 나름 정복전쟁을 하면서도 타국에게 책잡히지
않기위해선 명분이 필요했는데 그러한 명분중 하나로 훌륭한(?) 역할을 한거지 그리고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서구열강은 더욱더 침략에 열을 올렸고 피지배국의 훌륭한 문화는 짐승들의 야만적인 문명으로 치부되어

파괴되거나 모욕당하는 수모를 겪었지. 이른바 선진문명을 이들에게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말이야.


마치 그들 자신들이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같이 인류에게 불을 전달한 위대한 존재처럼 생각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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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인종적 형질에 대한 차별이론은 훗날 서구열강 그들에게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는걸

깨닫게 되는데 그러한 사건을 가져오는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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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lf Hitler 1889.4.20 ~ 1945.4.30)


이 인물이지.

소수민족 대학살에서 부터 아리아인의 우월성으로 순수한 아리아인을 위한 국가건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순수한 아리아인의 기준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물. 그리고 사회적 진화론에

입각한 또하나의 문제는 바로 T-4 프로젝트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열등인자 말살정책이었지.

이 T-4 프로젝트의 T-4는 베를린 티어가르텐 4번지에서 유래된 거야.


T-4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이전에 나치스는 이들을 안락사 하는쪽으로 우선하였지만 가톨릭계 병원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NSRPA 국가사회주의인종정치사무소는 이에 관련한 영상물이나 포스터를 통해서 인식의

변화를 노렸고 가톨릭계 병원들은 점차 폐쇄되어가면서 그동안 가톨릭계 병원에서 보호받던 장애인들은

국립기관으로 이송되어 관리되었는데 당연히 장애인들을 사회적 악으로 규정한 나치정권이 운영하는

이 국립기관은 시설은 매우 안좋았고 이러한 환경은 나치스의 선전재료로 활용됐어


그리고 1932년 단종법이 제정되면서 열등인자를 가진 자로 지정된 사람들은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아야했고

33년 나치스의 주도하에 유전적 질환의 자손예방법이라는 이름으로 45세 이하 여성들은 유전적 검사를 통한

열성인자 보유자의 강제 불임시술을 행했지 그리고 1939년 9월에 아돌프 히틀러는 극비 지령문서로 정신적 장애

가 있는 사람들이나 신체적 장애를 가진 모든 장애인들을 사회 부적격자로 확대 지정하여 사회에서 배척하고 또한

그들을 '살 가치가 없는 밥벌레'등으로 표현하며 죽일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지. 또한 이건 법률화됐고 이에 반대한

4천여명의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3559명이 패소했지. 그리고 법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나치 독일은

이른바 유전건강 병원 Erbgesundheitsgerichten을 만들었고 나치 패망이전까지 무려 200여개가 넘게 건설되었어.

이 프로그램을 총책임관리한 인물은 Karl Brandt 라는 인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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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히틀러가 싸인했던 그 T-4 프로젝트의 극비문서)


nazi_t4.jpg 

(당시 나치의 장애인에 대한 선전물 "이러한 자들 한사람당 6만 제국 마르크가

국고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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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Brandt 1904.1.8 ~ 1948.6.2)


Karl Brandt는 본래 1932년 3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하고 이후 히틀러의 초기 사병대 역할을 한 SA에 합류했었는데

그러다가 1933년 8월 15일에 히틀러의 부관 Wilhelm Bruckner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메자 이를 수술로

낫게하여 히틀러의 개인 주치의가 되었고 34년 7월 29일 본격적으로 SS(슈츠슈타펠=친위대)에 합류하여

근무를 하게되었지.


참고로 나치 독일의 만행중 하나인 Josef Mengele의 이른바 샴쌍둥이 연구를 도와준 인물이야.


info.jpg 

(T-4 프로젝트의 Tiergarten 4번가 중심지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명판)


hartheim1.jpg 

(당시 독일에서 자행된 장애인들을 안락사 시키던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령부의 건물)



(다음편에서 계속)


다음편엔 Josef Mengele 의 문제도 첨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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