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밥줘를 저렇게 싸고도는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by 오칼 posted Jun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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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고대인맥빨이라고 하면 간단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고대 나온 선수가 밥줘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MB도 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 하나만 가지고 밥줘를 저렇게 싸고 돌 것 같지는 않다.


MB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축구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강한 사람으로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게 MB가 축구화를 신은 이후로 한 순간이라도 명예롭지 않은 적이 있었나? 최고라는 평가를 듣지 않은 적이 있었나? 히딩크 시절 잠시 명단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결국 히딩크 신화의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냈지. 은퇴 이후에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장차 한국 국대를 구원할 감독처럼 지지를 받았다. 언더독 성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


아무튼 MB가 하고 싶은 축구는 그동안의 언행으로 보건데 도르트문트 식의 강한 압박, 그리고 선수들의 빠른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패스와 역습이 이뤄지는 축구라고 생각된다. 국대 감독에 취임하자마자 게겐 프레싱을 한국 축구에 이식하겠다며 입을 털었던 것으로 볼때 거의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함. 알다시피 이런 축구는 최전방에 박혀 패스를 받아먹는 클래식 스트라이커를 원하지 않음. 도르트문트의 레반도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거의 제로톱처럼 공격수가 왕성하게 1,2선을 오가며 패스를 주고받고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이런 축구를 실현하기 위한 공격자원이 누가 있나 보면, 이동국은 활동량도 준수하고 연계도 잘 하는 선수이지만 기본적으로 양질의 패스를 골로 바꾸는 타입이다. 물론 동궈횽이 전성기였던 09년이나 11년의 폼이었다면 이런 축구를 못 할 것도 없지. 하지만 올해는 동궈횽도 서른 여섯이고 폼이 예전 같지가 못 함. 어쩌면 나이 하나 때문에라도 이미 MB의 시선에서는 OUT 이었을거야. 이근호는 활동량이 좋고 특유의 쫄깃함으로 활기를 불어넣는 타입이긴 하나 MB가 요구하는 "영리함" 과는 좀 거리가 있지. 지동원은 원톱에 세우기 애매한 타입에다가 요즘 하는 거 보면 뭘 잘하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제외. 김신욱은 처음부터 헤딩 셔틀로만 생각했을테고. 마지막으로 손흥민. 얘는 원래는 톱이었지만 함부르크에서 윙으로 뛰기 시작하더니 이젠 윙으로도 잘 하고 있고, 한국팀의 유일무이한 옵션인 빠른 발과 드리블 돌파가 가능한 타입이라 MB의 머릿속에서는 처음으로 윙으로 고정되었을거야.


다들 알겠지만 밥줘는 골 결정력이 그렇게 준수한 타입이 아니다. 골을 많이 넣는 타입도 아니지. 전성기를 기준으로 보면 밥줘의 최고 장점은 축구 지능이었다고 본다. 토마스 뮐러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골을 넣는 수준 까지야 아니다만 1,2선을 오가며 날카로운 공간 침투, 동료 격수들을 이용한 재치 있는 오프 더 볼 무브먼트...이런 게 밥줘의 장점이었지. 남아공 때는 이런 점들이 제법 잘 발휘가 된 편이고. 


이런 기준으로 보면 MB가 밥줘에게 집착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나이도 적당한 29세로 어린 놈들 투성이인 국대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고(물론 실제로는 개소리에 불과했지만)전성기의 폼을 보면 MB의 축구를 구사하기에 가장 적합하단 말이지. 큰 무대에서의 경험도 있고.


내 생각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MB에게 독이 되었다고 본다. 그 때도 밥줘를 쓴다고 욕을 먹었지만 기적같이 가장 중요한 일본전에서 밥줘가 골을 넣으면서 그간의 문제점이 모두 덮여졌고 해피엔딩이 되었지. 아마 이걸 겪으면서 MB는 고집이 더 확고해지지 않았을까?


'봐라, 결국 내가 옳았다. 히딩크가 그러했듯 나도 내 길을 간다.'


그래서 MB는 책임지지도 못 할 원 팀과 원칙드립을 날려가면서도 끝끝내 이를 어기고 밥줘를 뽑아올렸다. 최근 폼이 시궁창이건 뭐건 데려다 훈련만 시키면 폼은 끌어올릴 수 있고 폼만 끌어올리면 내 축구를 실현해줄 적임자는 밥줘뿐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앞으로 MB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계속 눈 가리고 귀 막고 눈 앞의 현실을 부정할 것인지 아니면 뒤늦게라도 자신의 고집을 물릴 것인지. 이 선택이 앞으로 지도자로서의 MB 인생을 갈라놓을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