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축미디어]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기자들

by 신형민 posted Nov 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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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한 매체가 있다. 몇몇 원로 언론인들이 만든 인터넷 매체인데, 사실관계를 자기 입맛에 맞게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기가 막힌 능력을 가진 매체다. 사실 언론 자체가, 아니 인간 자체가 팩트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팩트에 대한 해석과 태도의 문제여야지 팩트 자체를 바꾸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즈>와 같은 매체들이 대선 기간이 되면, 공개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면서도 공정성을 잃지 않는 것은 '기본'이 잘 갖추어져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서구매체들에선 이 같은 모습이 자연스럽다.) '기본' 안된 해당 매체의 수준은 일베를 "서로를 '게이', '장애인'이라고 부르며 건전한 토론문화를 선도하는" 사이트로 보는 것으로 잘 보여줬는데, 개인적으로는 진보라고 사기치는 모 언론과 함께 언론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보는 매체다.(굳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괜히 이름을 말했다가 독자들이 그 언론을 궁금해하는 나머지 그 매체 기사를 클릭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굳이 축구와 상관없는 매체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축구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의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비교적 기사를 검증하는 잣대가 엄격한 다른 분야와는 달리, 스포츠 기사의 기사는 기자의 프레임과 기자를 둘러싼 이해관계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 기자들이 쓰는 기사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스포츠 조선의 김성원 기자의 경우, 전반기 시즌 동안 '비매너성 플레이에 피해를 입는 북패' 프레임을 계속해서 제기한다. 수원과의 경기를 전후로 이 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정작 김진규에 의해 라돈치치가 장기 부상을 당한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6월 17일 포항과 북패의 경기에서 신형민과 고명진의 충돌이 있었던 사건을 가지고, <심판 안일한 대응에 멍든 K리그, 고명진 중상>이라는 기사를 내놓았는데, "고명진의 갈비뼈가 2개나 골절을 당해서, 2개월 결장이 불가피"하다는 북패 구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신형민과 심판을 맹비난했다. 재밌는 사실은 고명진의 갈비뼈 골절을 보도한 매체는 스포츠 조선 뿐이었다. 갈비뼈가 2개나 부러져서 2개월 결장이 불가피하다는 선수는 휴식기가 끝난 뒤, 한달 남짓한 시간이 지난 7월 15일 인천전에서 후반 45분을 소화하고 그 다음주에는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었다.


  매체를 볼 때 조심해야하는 부분이 '익명의 관계자, 익명의 시민'이다. 취재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을 사용하고자하는 것인데, 누가 한 말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해당 기사의 말미에는 '익명을 요구한 한 K리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는데, 'K리그 관계자'라는 두리뭉실한 표현에 주목해야한다. 몇몇 기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기사에 반영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한 시민'이 되어 스스로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정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특정한 입장을 표명하는 뉘앙스가 강한 기사에서는 그런 태도가 더 잘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김성원 기자만 탓하기는 어렵다. 늘 같은 기자들이 같은 경기장에 출입하는 구조에서는 구단과 기자의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에, 기자가 특정한 이해관계에 휘둘리기 쉽다. 기자와 구단과의 야합일 수도 있고, 기자가 구단에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특정 축구매체는 K리그 구단들의 홈페이지를 제작, 관리해주는 사업을 함께 하는데, 언론과 구단의 관계가 이처럼 밀접한 경우에는 해당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 고발 기사를 쓰기 어렵다. 기사로 얻는 수익보다 홈페이지 구축으로 더 큰돈을 벌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그 매체는 K리그 구단의 인터넷 홍보대행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화제를 전환해서 내게 불편함을 주는 기자들이 축구, 전체적으로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한 기사로 특정지어서 지적하고자 한다면, 11월 7일, 동아일보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차장의 "제주와 울산을 서울로 보내자!"는 주장에서 나타나는 관점을 지적하려한다. 사실 축구팬 외의 사람들은 이른바 '패륜'논쟁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종목이나 연고이전이 습관처럼 굳어져있고, 축구 외의 종목에서는 사실 연고지라는 개념이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단순히 이해관계만 따지고 본다면, 연고이전은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조치다. 연고이전을 주장하는 목소리, 양종구 차장의 주장은 '효율과 경제성'에 집착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태도와 같다. 이들은 스포츠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기 때문에, 소위 '빅클럽'이라고 분류되는 팀들이 지방에서 흥행몰이를 하지 못하면서 연고지를 고수하는 것이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논리적,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는 납득이 갈수도 있겠다. 스포츠가 아닌 단순한 경제, 산업문제였다면 이 글을 읽는 축구팬들도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를 산업논리로 접근하는 최근의 태도는 마땅히 비판받아야한다. EPL과 같은 해외 스포츠 리그들의 상업적 성공은 '스포츠도 돈이 된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한다. EPL의 경우, 국내 팬들의 충성도가 엄청나고 영국연방, 미주와 아시아까지 커버하는 매우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MLB나 NFL의 상업적 성공은 미국 시장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가능했다. J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도, 일본 인구가 1억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스포츠와 문화예술은 내수시장으로 자립하기 위해선 인구가 1억이 넘어야 경제성을 가진다. 인구로는 일본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나라, 영국과는 달리 즐길거리가 너무 많고 팬들의 충성도가 떨어지는 국가에서 스포츠가 사업이 되기는 어렵다.


  EPL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독일 분데스리가를 짚어보자. 독일은 스포츠 구단이 하나의 '복지 제도'처럼 운영이 된다. 바이에른 뮌헨의 경우, 농구팀과 배구팀, 심지어 체스팀을 가지고 있고 각 종목에는 아마추어 클럽이 따로 존재한다. 제약회사 바이엘이 사내복지를 위해 만든 레버쿠젠은 바이애슬론과 같은 동계 스포츠 종목도 운영한다. 클럽이 생활스포츠를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역할은 상업적 색채가 짙은 EPL에서도 존재한다. 스폰서쉽, 입장권 등으로 얻은 수익을 계속해서 선순환 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구 5천만의 한국이 지향해야하는 프로스포츠의 모습도 사실 이런 것이어야한다. 하지만 언론이 관심있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흑자를 내고, 얼마나 큰 적자를 내는지의 여부다. 이들 구단이 지방에 있으면서 내는 법인세와 직원, 선수들의 급여에서 나가는 소득세, 지방세, 그리고 경기가 열리면서 생기는 지출과 유동인구의 증가가 열악한 재정에 시달리는 지방정부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는다. 지방정부들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시도민구단을 운영하려고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 인프라 격차가 크다는 점도 고려되어야한다. 연고이전으로 프로스포츠팀을 잃음으로써 생기는 해당지역의 피해는 생각치 않는 주장이다. '낙수효과'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하지만 왜 이들은 여전히 '낙수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이 온전히 팬들의 것이 되지 않는 이상, 연고이전과 같은 불합리함과 팬들을 생각하지 않는 조치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룹의 총수가 야구장을 방문해서 바닥권 수준의 야구팀한테 정신무장과 우승을 강요하는 불합리함은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K리그 팀들도 '지역의 팀'이라기보다는 '어느 그룹의 팀'이다. 모기업 때문에 서산에서 '원정 홈경기'를 치룬 울산과 서울에서 팬사인회를 하는 남패의 모습이 그렇다. 시민들과 축구팬들이 주주로 있는 시도민구단들은 시도지사에 의해 운영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이런 불합리함을 제대로 진단해주지 않는다. 이 글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분노하는 기자들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그 기사의 질들도 훌륭하지는 않다.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보여주는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들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기자의 생각이 짧아 거기까지는 생각이 안뻗을 수도 있고, 해당 구단의 눈치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김성원 기자나 양종구 차장처럼 구단과 구단을 운영하는 이들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폭을 좁히면서, 축구기사는 매우 단조로운 패턴을 유지한다. '앵무새' 기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기자들은 아직까지 축구팬들의 감정적 분노 수준 이상의 기사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한다.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취재 대상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객관적인 시선이다. 한국 스포츠 언론은 그런 점에서 기자로써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를 지니지 못했다. 글의 시작에서 이야기한 문제의 매체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 기사들을 어쩔 수 없이 봐야하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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