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오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by Pyublog posted Jul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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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터 매장에 와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가던 여자 손님이 언제부터인지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손님이 많은 날이든 없는 날이든 창가 구석진 자리는 항상 그녀의 것인 것 마냥 비어 있다. 그녀는 대학생일까. 왜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기 시작했을까. 화장기 없는 얼굴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그녀는 항상 책을 읽는다. 3일에 한 번씩 손에 들고 있는 책이 바뀐다. 오늘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이었던가.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여자 주인공 이름이 떠오른다. 그래. 클로이. 앞으로 그녀를 클로이라고 하자.

평소보다 손님이 부쩍 없던 어느 날 클로이가 와서 평소에 마시지 않던 라떼를 주문했다. 평소에 드시던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은 이분의 일 아니었나요 라고 우물거리자 오늘은 왠지 단 게 먹고 싶네요 하면서 살포시 웃는다.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만 살짝 촉촉한 느낌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에게 커피를 내 주고 멍 때리고 있는데 사장이 다가와 뒤통수를 때리며 왜 멍때리고 있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으며 매장 정리를 하겠다고 카운터를 나섰다. 사장이 계속 나를 쳐다 본다. 네놈 때문에 손님이 없잖아 하고 묻는 듯한 시선을 느꼈지만 모르는 체 했다. 

그 뒤로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날은 더워지는데 사장은 매일 와서 잔소리나 하고. 손님은 계속 없고. 클로이는 여전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놓고 책을 읽는다. 어느 날, 사장이 친구들과 피서를 떠나 사흘 정도 매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신난다. 앞으로 한동안 내 세상이겠구나. 그렇게 신나하고 있던 차에 클로이가 왔다. 오늘의 첫 손님이다.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인가 보다. 클로이는 오늘 아메리카노가 아닌 라떼를 주문했다. 이번엔 라떼로 주세요 하는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 있었어요? 하는 질문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켰다. 그녀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있다. 멍하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하고 되뇌면서 그녀를 본다. 책을 읽다 문득 창 밖을 쳐다보며 눈가를 문지르는 손길이 섬세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그녀가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물으니 살짝 미소를 짓고서 돌아선다. 하얀 햇살 속으로 녹아드는 듯 한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쟁반 치워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쟁반을 바라보았다. 반으로 잘 접은 종이 쪽지가 보인다. 

쪽지에는 작고 반듯한 글씨로 짧은 글과 전화번호가 씌어 있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고 싶죠? 연락.. 기다릴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