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묘인]토끼를 키운다는 것은

by 라라곰 posted May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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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 부터 토끼를 키웠고, 지금까지 2마리, 1마리, 1마리, 6마리(-3), 1마리 ...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아무튼 많은 토끼를 지켜보고 키워 ... 아니 키웠다기 보단 같이 살아와서 그런가, 나는 누가 토끼를 키운다고 하면

일단 '아서라, 힘들다.'부터 뱉게 된다. 토끼는 그렇게 만만한 생명체가 아니다.

 

우선 어린 토끼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힘들어하고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무지개 다리 건너가기 십상.

예쁘다고 자꾸 만지고 안아주고 하는 것도 역시 좋지 않은데, 그게 쉽지 않다. 정말 귀엽거든.

어린 토끼는 귀도 작고 꼬리도 작고 정말 하는 짓은 토끼인데 그 모양새가 작아서 귀여움이 일곱배는 증폭되는듯.

근데 그렇다고 와악, 귀여워 사랑스러워 으오아아앙 하면서 만지고 귀찮게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역시 애들은 풀어놓고 멋대로 키워야해. 사랑은 주지만 그렇다고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면 곤란.

 

토끼 물 싫어한다고, 물 주면 안된다는 멍청이를 본 적이 있어서 말하지만 토끼도 물 마신다.

겁나 잘 마심. 벌컥벌컥. 물! 물 줘 이 주인놈아!!! 이러고 스텀핑(뒷발로 탕! 하고 소리를 낸다. 씨끄러움.)하면서

자는 나를 깨우기도 하는 이 못난 토끼놈... 부들부들. 대신 너무 많이 주면 곤란하지. 야채를 준다면 물을 안 주고

적당히 ... 난 이 기준이 참 애매한데 어쨌든 적당히 주면 되는 것이고. 많이주면 설사하고 어린 토끼는

죽을수도 있음. 난 그래서 처음 키울 때 한 마리가 죽어버렸지.

 

사료는 비싼 것 먹일 필요 없다. 애들 입맛만 까다로워지지. 건초? 우리 동네는 아직 청정해서 동네 뒷산에서

풀 좀 뜯어다 말려서 먹이곤 하는데 또 막 먹이면 곤란하지. 사람이 냄새를 맡아서 으, 이거 좀 냄새가 특이해 하는 건

토끼에게 먹이지 않는 편이 좋다. 토끼따라 입맛도 다르지만 ...

우리 어르신은 까탈스럽기 때문에 아무거나 드시지 않으셔서 사료 바꿔야 할 때 마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

게다가 해바라기씨를 좋아하셔서 늘 해바라기씨를 조공해야하는데

비야는 그냥 다 처먹음. 말 그대로 처묵처묵. 비야가 제일 좋아하는 건 국화꽃. 말리지 않은 생화도 잘 먹고 벚꽃도 먹고

장미는 맛 없는지 안 먹고 ... 아무튼 주면 다 먹음. 대신 향이 강한 것은 둘 다 싫어함. 시큼새큼한 귤껍질은 주면

어르신은 멀찍이 앉아 꺼지라고 하시고 비야는 먹을거다!!! 으왕!!! ... 으앜 셔!!! 꺼져!! 하는 편.

먹는 만큼 싸기 때문에, 그리고 과일을 주면 소변 냄새가 쩔기 때문에 청소는 매일매일. 우리 집에서는

신문지를 활용해서 치우는 편인데, 그것도 일이다 ... 귀찮아서 두면 코를 찌르는 스멜이 쩔어.

 

성격도 달라. 분명 우리 어르신 아들인데 비야는, 비야 엄마도 그렇게 활달한 성격이 아닌데

얘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활달한고. 나 닮았나? 퇴근해서 방에 내가 들어서기도 전에 케이지를 물어뜯(!)고

꺼내줘 놀아줘 으왕아아아아아아아 파닥파닥거리고,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시면 으와앙 엄마!!! 나 꺼내줘!!!

이러고 있는데 ... 어르신은 문을 열어놓고 무심하게 5분은 있어야 나오심. 소심소심.

근데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이 자길 꺼내놓고 관심이 없으면 와서 코끝으로 쿡쿡 이보시오 주인양반? 한다는 것.

그럴 때 정말 귀여워 미치겠음. 하지만 그 이후에 내 책, 내 노트, 전기선 등등 닥치는 대로 갈아먹고 파파파박하고 ...

이어폰을 몇 개를 끊어먹었는지 모르겠다... 아아....

 

그렇다고 말을 듣길 하나. 혼내면 그 때 깜짝! 놀라서 얼음땡, 하다가 삐쳐서 구석에서 모피강화하고 뚱해있고

심하게 삐치면 아무리 불러도 못들은 척 하고 ... 성질난다고 방금 준 사료 엎어버리고 ... 나와서 내 옷이나 이불에

쉬야하고 도망치고 ... 으아아아 ...

 

이 얘길 왜 하는거냐면, 자꾸 누가 토끼 키우고 싶다고 해서 이런 얘기를 해줬는데

'그래도 귀엽잖아?'라는 논리로 내 이야기를 쳐드시고 계셔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토끼 키우는 거 어려우니 심사숙고하자는 생각 못 하나 싶어서 해 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