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ve, My Suwon - 17

by BOT posted Jul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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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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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나이를 생각하라고! 형이 충고하는 거야. 나도 챙겼지만…….”

  “그럼 지금 뭘 먼저 해야 할까요?”

  “네 방 주위를 먼저 정리해야겠다는 느낌은 안 드니?”

  순간 방안을 살펴봤다. 원룸인 내 방. 온통이 옷과 과자 봉지들로, 각종 책들로, 아니 과거의 난지도를 방불케 하는 쓰레기장으로 보였다.

  “그거 먼저 해야겠네요. 그럼 끊을게요.”

  “그래. 그리고 진짜 여자 친구로 되면, 형한테 인사시켜라. 경기장에서…….”

  은경이 누나를 꼭 소개 시켜줘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 충고 고마워요.”

  그렇게 전화가 끝나자마자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과자 봉지를 비롯한 쓰레기들을 버리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속옷, 양말들을 세탁기에 넣고, 책들은 먼지 쌓여있는 책꽂이에 꽂아뒀다. 다음은 환기였다. 창문들을 열고, 대충 식기들을 설거지하면서 정리했다. 수북이 쌓여있는 라면 끓인 냄비들이 걸림돌이었다.

 

  시계를 살펴보니 3. 뭐 그런 대청소가 있었나 싶었지만, 이사 오기 전의 방 상태를 만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심심해서인지, 짬이 나는 건지 컴퓨터에 다시 앉아, 내가 주로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심심풀이로 오늘 아는 누나가 집에 온다는 장난 글을 썼다. 그러자 10개가 넘는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런데 졌다라는 댓글부터, ‘인증을 요구하는 댓글, ‘사고는 치지말자라는 댓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당장 편의점에 가서 준비 안하고 뭐하냐?’는 댓글도 있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요리 사이트에서 비엔나소시지 볶음 만드는 방법의 재료들과 조리법을 살펴봤다. 재료들을 적은 뒤, 대충 옷을 입고 근처 슈퍼로 향했다. 슈퍼에서 이런 이유로 장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것보단 다른 이유로 다른 물건을 산 것도 처음이었다. 아주머니가 나와 그 물건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는 모습은 다시 상상도 하기 싫다.

 

  이쯤 되니 4시가 넘었다. 처음 만드는 음식이니 만큼, 준비도 단단히 했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안주 축에도 가장 쉬운 것이 아닌가! 결국 주문의 힘도 빌리기로 했다.

 

  530분이 넘어서 은경이 누나에게서 출발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주문의 힘은 이 때 왔어야 했다. 비엔나소시지의 양이 적은 걸 대비해서, 차라리 남는 게 남는 거고 나중에 데워 먹으면 되니까 프라이드 한 마리, 양념 한 마리를 시켰었다. 문제는 갑자기 전화로 우리 가게는 테이크아웃이라며 배달이 안 되니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투덜투덜 거리면서 630분쯤에 치킨 집에서 치킨을 받아두고 집에 거의 다 도달할 때였다.

  “. 치킨 먹는 거야? 누가 닭 아니랄까봐.”

  뒤를 돌아봤을 때, 은경이 누나는 맥주 피처와, 소주병이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있었다. 역시나 수원 유니폼. 그리고 파란색 머리끈을 한 갈색 포니테일 헤어스타일.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지만 아닌 척 참았다.

  “아니 뭘 그렇게 술을 많이 샀어요?”

  나는 부리나케 은경이 누나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 물건을 들어주려고 했다.

  “넌 그거나 들어. 축구엔 맥주, 맥주엔 치킨, 그리고 맥주로는 아까우니까 소맥! 그리고 지금 더 살까말까 하는데…….”

  “그러다 취하시면요?”

  “취하면……. 자고 가면 되는 거지. 네 집이 내 집이고 뭐…….”

  “……. 괜찮으시겠어요?”

  순간 목소리가 또 떨렸다.

  ‘자고 간다니! 이럴 수가 없어!’

  “집에 아무도 없어. 우리 아빠가 또 신나게 야구 구경을……. 갔거든.”

  “아버지가 야구팬이세요?”

  “.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빠가 OB를 좋아했었어. 지금은 두산이고. 나는 뭐 야구는 그닥이고, 서로 그냥 존중하면서 경기 보고 그래. 아빠는 내가 지금쯤 부산에 있는 걸로 알고 있을걸.”

  “, 그렇구나. 솔직히 말해 봐요. 짐 무겁죠?”

  은경이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

  “. 바꾸자. 그리고 네 집은 왜 이리 언덕에 있는 거야!”

  “운동 좀 하려고요. 주세요.”

  언덕을 조금 오르자, 내가 사는 원룸이 나타났다.

 

  “저기, 조금 누추하지만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요.”

  “. 남자 애 집이 다 그렇지. ! 나온다고 정리한 거 너무 티 난다. .”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요. …….”

  “그나저나……. 너도 FM하냐?”

  그러고 보니 FM 하던 컴퓨터를 미처 끄지 못했다. 마우스를 눌러 저장 후 종료 버튼을 눌렀다.

  “. 하죠.”

  “FM 바탕화면은 웬 소녀시대야? 너 소시빠였어?”

  “, 아녜요.”

  ‘난 그저 티파니가 좋아서 바탕화면을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잠깐 짐을 풀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어디보자. 컴퓨터 살펴봐도 돼?”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에 하드를 내가 지웠는지 기억도 하기 전에 이 누나는 최근 파일 목록부터 보려고 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내 문서 최근 파일들은…….

  “. 뭐야. 재미없게. 과제 밖에 없어?”

  “열심히 공부해야죠! 빨리 와요! 다 지워서 그런 거 없어요!”

  ‘아뿔싸!’

  “뭘 다 지워?”

  “그러게요. 뭘 지웠을까요?”

 

  어찌 되었던 간에 준비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서(마주 앉아보기는 좀 그랬다. 원룸의 구조적 특성상 TV는 봐야 하니까 라고 말했지만 불가능 한 게 어디 있겠는가?’) 경기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수원 블루윙즈 보다는 부산 아이파크에 있었다. 작년 까지만 해도 우리 팀에서, 모 팬한테 모욕을 듣고 분한 마음에 경기장에서 뛰고 있다가 관중석으로 난입한 안정환. 그가 다시 옛 친정팀 부산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돌아온 이후의 안정환은 첫 경기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선홍 감독 부임 후 첫 개막전에서 프리킥을 이용한 도움 비슷한 공격으로 팀의 2-1 승리를 안겼었다. 그리고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경기에서는 정말 마법과 같은 발리 슈팅으로 1-0, 결승골을 넣은 바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전 친정팀과의 맞대결을 앞둔 것이었다.

  확실하게 17,000여 명이 넘는 많은 관중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부산 아이파크가 가변 좌석을 설치해서 그런지(라고 말해놓고, 원정석인 S석에는 가변 좌석이 없다고 쓴다. 그래도 응원 소리는 중계에서는 우리 수원 응원 소리 밖에 잘 안 들린다) 더 많은 관중을 오게 만드는 마케팅은 너무나 멋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Yellow Submarine’이라도 하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뭐 대신 은경이 누나가 말아주는 소맥을 마시고 있으니…….

  그나저나 언제 고백이라는 말을 해야 할까, 수원의 승리보다 더 걱정스러웠다. 하긴 수원이 이겨야 기분이 더 좋은 상황이 연출될 거였으니…….

 

  아무튼 경기가 시작되려 했다. 안정환은 맨 마지막으로 마토와 나란히 필드로 입장했다. 안정환의 위치는 정성훈의 바로 밑에서 공격을 풀어나가는 자리였다. 수원의 수비진은 이정수, 마토, 곽희주, 송종국 이렇게 플랫4 라인이 구축되었다. 미드필더 진은 이관우, 조원희, 박현범, 안효연 그리고 공격은 신영록과 에두의 투톱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전반 초반 루즈볼을 잡은 에두의 슈팅은 골키퍼 정면을 향했다.

  “, 이런 게 좋아졌어요. 에두 선수가요. 지난 시즌에 비해서 유효 슈팅이 많이 늘어나고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수 있는 슈팅을, 논스톱 슈팅을 자주 저렇게 때린다는 것이 이번 시즌에 매우 좋아졌습니다.”

  경기 해설자의 말이 들려왔고,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는 에두 콜이 울려퍼졌다.

 

  부산의 공격도 날카로웠다. 이강진은 측면의 안정환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안정환은 중앙으로 침투하면서 김승현에게 패스를 주었고, 그는 마토를 교란시키면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안정환에게 다시 패스를 주었다. 수비가 전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슈팅을 때렸지만 멀리 날아갔다. 안정환은 슈팅 이후 정성훈을 끌어안으면서 아쉬워했다.

 

  전반 18, 수원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송종국이 오른쪽 하프라인 부근에서, 안효연에게 길게 스루패스를 날렸다. 안효연은 우측 측면에서 공을 살리며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을 향하여 크로스를 연결했다. 에두는 여유롭게 볼을 컨트롤 한 이후, 골키퍼가 나와 있는 것을 살짝 보면서 왼발 인사이드 킥으로 공을 툭 밀어 넣었다. 골네트를 흔들었다. 1-0으로 앞서가는 순간이었다. 에두의 정규리그 3호 골이었다. 나나 은경이 누나나 서로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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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kffactory.com/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