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by 완소인유 posted Apr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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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낙복 (@낙양성의복수) 과 필력더비 서막을 여는 글


 매일 당연하다고 여기는 우리의 삶.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시간.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문을 나서서 학교 (혹은 회사)로 향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혹은 차를 타고), 발걸음을 옮기며 핸드폰 이어폰 잭에 이어폰을 꽂고

 걸음을 옮길 때 힘을 실어주는 고유진의 Hi-Five를 켠다.


 하루가 끝이 났다.

 씻고 개발공에 들어가서 계도타임도 보고 길냥데레의 글 제목을 보며 '만날 저형은 뒤에 ..을 붙이더라' 라고 하고

 우리 쿡형은 또 어디서 흥미로운 기사를 가져왔네 역시 나의 쿡형 하면서 보다가

 네이버 스포츠를 들어가서 야구 축구 보다가.


 커튼을 치고 모니터를 끄고 엄지발가락으로 스위치를, 아, 좀. 아 진짜 안 꺼지네. 딱. 그래 됐다.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세월호가 물에 잠기고 숱한 영혼들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이 삶은 계속되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의 일이다.

 일부러 세월호 참사 관련 글을 하나도 올리지 않았고 내가 이용하는 어떤 계정에도 관련된 표시를 하지 않았다.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고 매정하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살아 있는 나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참사가 인재人災라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이야기할 만한 정황들이 많이 잡혔다.

 그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연하겠지만.

 나 또한 많은 부분 동의했고 그래서 한숨이 깊어졌다.


 아직 끝이 나지 않았고,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그만 모두 포기하자, 선동하려는 의도 같은 건 조금도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라도 이런 인재를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나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잘못된 교육 제도의 밑에서 교육이 아닌 사육을 당하던, 꿈 많고 서투르고 예쁘고 순수했을 우리 동생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24시간을 잘 살아가는 것.


 더 이상 이런 값을 치루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계속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각자 살아가고 있는 그 필드에서 최선을 다해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 방향성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먼저 간 꽃다운 영혼들과 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릴 수 있으리라.


 살아가던 우리 모두, 이제 다시 힘을 내어 돌아가자.

 물론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만, 저 멀리 팽목항에 닻을 내렸던 마음들 모두 다시 거두어들이자.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할 곳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힘 있고 내실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 더욱 그리해야만 하겠다.


 다만 시험 기간이 겹쳐 분향소에라도 가서 가는 길에 인사조차 하지 못한 나의 상황이 미치도록 싫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