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해오던 북쪽패거리 미래기획단장직은 왜 내려놓은 건가?
부서가 없어졌다. 부서를 따로 두지 않고 내부에서 그 업무를 추진할 모양이다. 계약도 2년이었다. 나는 적어도 투자의 결실을 보려면 6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간 자리였는데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구단이 기술자 중심으로 운영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데 행정의 마인드로 가면 그런 일이 생긴다. 구단 운영자가 바뀌면서 철학이 나와 맞지 않았고 벽이 있다는 걸 느꼈다.
북쪽패거리에 상당히 섭섭한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섭섭한 정도가 아니다. 내가 처음 북쪽패거리에서 유소년 육성을 총괄하기로 했을 때 오히려 그쪽에서 그랬다. "언제든 당신은 감독직 제안이 들어오면 떠날 사람 아니냐." 그래서 내가 말했다. 먼저 북쪽패거리들이 이 업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는 6년 동안 어디 안 간다고 말이다. 사실 많은 축구인들이 현장에서 지도자를 하려고 하지 유소년 시스템 만드는 걸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도 고민했지만 포항에서 감독을 할 때부터 언젠가는 이런 일을 하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지도자 생활까지 포기하고 도전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참 난감했다.
K리그 조작 암덩어리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그들을 품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내가 2011년 4월에 강원 감독직에서 물러났는데 승부조작 사건이 2011년 5월에 터졌다. 나도 그 문제의 현장에 함께 있던 지도자였다. 선수들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는데 걱정이 됐다. 내 아들도 축구를 했고 이 조작놈들 역시 다 내 아들또래다. 남 일 같지 느껴지지 않았다. 조작들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걱정이 됐고 그냥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프로축구연맹에 제안을 했다. 내가 나서서 조작놈들과 자원봉사를 다니며 대화를 많이 나눴다.
처음 접한 조작놈들은 어땠나?
교도소로 면회를 갔는데 30분 동안 울기만 하더라. 너무 죄송하다면서 앞으로 밖에 나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거다. 그래서 "그냥 아무 걱정하지 말고 죗값 치르면 나와서 떳떳하게 살자.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후 한 달에 두 번씩 계속 봉사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세상에 나오는 걸 꺼려해 다들 경직된 표정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활발해지더라.
지난해 징계 철회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승부조작이 딱 한 번 있고 영원히 사라진 문제면 충분히 징계 철회 여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에서 터지니 배구에서도 터지고 야구에서도 터지고 농구에서도 터졌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또 승부조작이 벌어졌다. 협회 내부에서도 이건 선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문제는 상당히 민감하다.
항상 그 조작한 암덩어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징계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축구선수로 재기를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축구계에서 저지른 일이니 꼭 징계가 풀리는 게 아니더라도 축구계의 용서를 받아야 사회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다. 만약 축구계에서 용서받지 못하면 사회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자." 승부조작으로 여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만약 조작놈들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이들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