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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남자, 서울 여자.
- 너와 나 그리고 세 번의 슈퍼매치
- 2화. 즐거운 편지
3.
감겨진 두 눈이 파르르 떨린다. 일순간 번쩍 눈꺼풀이 떨어졌다.
현우는 입가에 침을 가득 묻힌 채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는 순간 몸에 경기를 일으키며 소파에서 몸을 떨어트렸다.
11시 30분이었다. 민아와의 약속시간이 30분밖에 남질 않았다. 현우의 집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40분정도 걸린다. 지금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오 미쳤다. 미쳤어”
바로 그렇다. 현우는 허둥지둥 화장실 앞으로 갔다. 오늘 입으려고 셔츠도, 니트도 심지어 재킷까지 풀 세팅해서 안방 옷장에 걸어놓았지만 도저히 입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벗어 던져놓은 옷 무더기를 다시 뒤적거렸다.
양말을 제외하면 어제와 다름없는 차림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지하철을 향해 뛰어 가며 행여나 옷에서 냄새는 나지 않을지 팔을 코에 갖다 댔다. 다행히도 별 냄새는 나지 않는 거 같았다.
겨우 겨우 지하철을 탔을 때가 11시 45분이었다. 현우는 거친 날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꺼냈다. 땀으로 끈적거리는 손을 바지 뒤춤에 두어 번 쓱쓱 닦고는 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스피커 너머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그 목소리에 가슴 설레어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다. 미안함을 표시하는, 낮은 톤의 목소리에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를 의미하는 “헉헉”을 첨가해 말했다.
“(헉헉) 민아야, 내가 그러니까 지금 정말 미안한데. (헉헉) 어제 마감이 늦게 끝나서 조금만 자자고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보니까 시간이 11시 30분이더라고. 그래서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긴 탔는데. (헉헉) 한 10분정도 늦을 거 같은데. 정말 정말 미안해. (헉헉)”
“괜찮아. 나도 조금 늦을 거 같아서 지금 막 전화하려고 했어. 도착하면 다시 전화해.”
다행히 민아도 제 시간에 도착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현우는 눈을 감으며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조금 있다 만나자.”
그제야 현우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오른쪽 눈에는 노란 눈곱이 끼어있고, 입가엔 침 자국 빛을 내고 있다. 다행인건지 머리는 뒤통수가 조금 눌려 있을 뿐 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위로 올라가기 전 현우는 편의점에서 조그만 왁스 한통과 선크림을 샀다. 화장실로 들어 가 세수를 하고 얼굴에 선크림을 발랐다. 이어 왁스로 눌린 부분을 띄우고, 전체적으로 손질했다. 끝나고 남은 왁스와 선크림은 재킷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공원 입구에서 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아는 지금 공원 중앙 분수대 앞인데, 자신이 공원 입구 쪽으로 나오겠다고 말했다.
공원 입구를 서성대며 민아를 기다렸다. 휴대폰 카메라로 머리 모양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한 10분쯤 지난 거 같았는데도 아직 민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원 분수대에서 입구까지는 달팽이가 기어와도 10분이면 도착하고 남는다. 세레모니까지 해도 시간이 남을 거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 오고 가는 사람들 무리에서 민아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민아의 모습만이 보였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그 때 그녀의 모습을 어떤 단어로 형용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니 이 세상 어떠한 단어로도 그 때 그녀의 모습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일순간 다른 사람들이 사라진 거 같았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민아의 뒤에서 광채가 났다. 이것이 머리를 싸매고 겨우 생각해낸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분명히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그 때,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4.
휴대폰 알람 소리가 귀를 때린다.
양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휴대폰을 집었다. 8시 30분이었다. 민아는 오늘 일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배시시 웃음을 짓곤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 아침 대용으로 간단하게 우유 한잔을 마시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 어제 일찍 자는 건데.”
어젯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옆으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다시 옆으로 눕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자정이 넘어서 겨우 잠에 들었다. 양 손으로 얼굴을 포갰다. 포갠 손을 아래위로 문지르고는 씻기 시작했다.
헤어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고데기로 머리를 정리했다. 오늘의 화장 콘셉트는… 한 듯 안한 듯으로 결정! 메이크업 베이스를 하고 입술에는 립클로즈만 발랐다. 파우더하고 마스카라는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음
화장대 의자에 엉덩이를 땠다, 붙이길 반복했다. 결국은 과유불급이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사자성어를 떠올리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나친 건 안하는 것보다 소용없다니까. 암. 정답이지.”
민아는 미친X처럼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벽장 앞으로 가 옷걸이에 걸어 놓은 마요네즈 색 니트와 롱스커트를 입었다. 오늘을 위해 미리 코디 해놓은 옷들이었다. 니트는 새로 산 옷이지만, 새 옷인걸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한번 세탁했다.
샤라라~ 러시아 무용수처럼 한 바퀴 돌면서 전신 거울 앞으로 갔다. 너무 튀지도, 그렇다고 너무 대충 입은 거 같지도 않았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니트 색깔이었다. 노란 색 니트가 더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뭐가 더 괜찮지…….”
옷장 안에서 노란 색 니트를 찾아 입어 봤다. 괜찮아 보였다. 마요네즈 색과 노란 색. 민아는 두 색깔의 니트를 번갈아 봤다. 수능 시험을 찍을 때 보다 더 고민했다. 결국 선택은 60초 뒤에... 는 농담이고 처음 준비한 니트로 결정했다.
외출 준비를 완벽히 마치자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우와의 약속 장소까지는 30분정도니까 여유가 있다. 민아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을 나섰다.
정확히 11시 35분에 약속 장소인 공원에 도착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도착했다. 왠지 이 약속만 기다리며 일주일을 지낸 사실을 들킬 거 같았다. 일단은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어 갔다. 창문가에 앉으면 현우와 마주칠 수도 있을 거 같아 제일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를 검색하다가 이제 그만 짐을 챙기고 나가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 쯤 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아는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헉헉) 민아야, 내가 그러니까 지금 정말 미안한데. (헉헉) 어제 마감이 늦게 끝나서 조금만 자자고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보니까 시간이 11시 30분이더라고. 그래서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긴 탔는데. (헉헉) 한 10분정도 늦을 거 같은데. 정말 정말 미안해. (헉헉)”
현우의 목소리는 오버 그 자체였다. 미안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 같았다.
“괜찮아. 나도 조금 늦을 거 같아서 지금 막 전화하려고 했어. 도착하면 다시 전화해.”
현우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까 일어섰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가방을 반대편 의자에 내려놓고는, 책상에 엎드렸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왠지 모르게…….
“왜 이렇게 힘이 빠지지... 하.”
*수원 남자, 서울 여자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정기 연재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글 = 정재영(spego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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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kffactory.com/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