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자들이 앉아 있고, 선수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마케팅팀장과, 연맹 대표가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마케팅팀장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앉으시오."
영표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어느 팀으로 가겠소?"
"할렐임마"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팀장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할렐임마도, 마찬가지. 연고 없는 팀이요. 2부리그에 종교논란까지 딸리는 낯선 팀으로 가서 어쩌자는 거요?"
"할렐임마."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아선구를 왜 포기하는 거요?"
"할렐임마"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마케팅 부서원이 나앉는다.
"지금 우리 팀에서는, 타팀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법령을 냈소. 당신은 누구보다도 먼저 차량을 타게 될 것이며, 팀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우리 서포터들은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어머니 조광래도 당신의 선택을 반기실 거요."
"할렐임마"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팀장이, 다시 입을 연다.
"당신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축구인 생활에서, 유럽리그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팀은 당신의 하찮은 개리그 미복귀를 탓하기보다도, 당신이 팀과 팀의 팬들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당신은……"
"할렐임마"
연맹 대표자(한웅수)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팀장은, 증오에 찬 눈초리로 영표를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선수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안양이군."
설득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할렐임마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제 고향팀보다 나은 팀이 어디 있겠어요. 할렐임마 가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할렐임마 가 봤자 고향이 소중하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안양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안양엔 연고지로서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개축팀은 무엇보다도 연고의식이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GS에서의 훈련과 안양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할렐임마"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팀 내 고향의 한사람이, 할렐임마로 가겠다고 나서서, 팀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여러 안양 서포터들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안양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할렐임마"
"당신은 안양공고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축구선수입니다. 팀은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팀을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할렐임마"
"노련한 선수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향팀을 버리겠습니까? 맘에 안든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드래프트 우선지명종자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팀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안양의 품으로 돌아와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할렐임마 부흥시키느라 고생하느니, 안양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안양에 올 경우에,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영표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방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할렐임마"
설득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상대 진영 마케팅 팀장을 돌아볼 것이다. 상대 진영 팀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방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후략)
결국 할렐임마도 못 가고 은퇴하게 됐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