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에 LG가 서울로 가겠다고 했을 때, 팬들과 지역사회의 유례없는 저항이 뒤따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연고이전 자체에 대한 소소한 잡음들이 없을 순 없겠으나 축구계 전체가 발칵 뒤집힐만한 이슈가 되지는 못했기에.. 그렇기에 이전하겠다고 발표할 때도 대다수는 서울로 따라갈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긴 하다. 그렇기에 지놈들은 연고'복귀'라 주장했겠지.
04년 당시에 조금 더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면, 예컨대 당시 안양팬들 중에 집회나 시위를 많이 주도해본 경험있는 운동권 출신이라도 몇 명 있었다면 연고이전을 무산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은 지금도 갖고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안 갈 놈들은 아니었겠지. 이미 연고이전을 발표한 순간부터 올 것은 왔고 이전한 순간부터 다음을 기약해야 할 위치에 주저앉았으니. 9년 전엔 진짜 다른 안양빠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할 짓 안할 짓 다 했던 것 같다. 성명서 발표에 서명운동에 피켓 거리행진에 대규모 시위에 축협앞 시위에 바리케이트 짜고 LG구단 미친 프런트 정모새끼가 레드 고딩 애 하나 목 졸라서 병원 실려가는 것도 보고.. 그 친구는 병원 실려가서 치료 받고도 아마 다시 신문로에 왔었지. 레바논전 닭장에서 홍염까고 북패놈들 개막전엔 레드 몇몇친구가 그라운드에 난입했고, 그해 모란에서 성남과 북패가 만났을 땐 경기 끝나고 북패 프런트놈들한테 소소한 보복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도 저항은 강했고, 그것이 타구단 팬들마저도 GS를 패륜으로 부르는 데 한 몫 했으니까.
그때의 '패륜'과 지금의 '패륜'이 무게감이 다르고, 혹자들은 북패륜의 관중수를 들어 '패륜'호칭이나 지금까지의 저항이 실패했다고 결론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 강한 저항들이 덧없이 끝나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안양이 다시 창단되었으니까 당연히 의미있는 저항이고, 다른 팀의 연고지 이전이나 팀해체까지 막을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한 것 같아서 말이다. 물론 오늘 성남시의 결정이 100% 축구팬들의 저항이나 의식변화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테고 내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나름의 계산과 판단이 있었겠지. 하지만 04년에 우리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06년에도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지금 성남의 상황은 어찌 돌아가고 있었을지 알 수 없다. 연고지 바꿔도 팀은 유지되니까 그냥 팔아넘겨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보는 눈이 적을테니.
90년대부터 축구 봐온 횽들은 잘 알겠지만 90년대와 지금의 팬들 인식은 거의 180도 달라진거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무방해. 동대문에서 그냥 발길질이 좋아서 지지팀 개념을 정립하지 않은 채 축구보던 PC통신(정확히는 하이텔이 시초) 1세대들이 그들 눈에 멋진 경기를 하는 것 같은 유공축구단 응원하겠다고 단체응원 하다가 유공이 부천으로 가니까 따라나간 게 헤르메스, 또 신생팀이 창단된다니까 동대문 세 팀은 별로 응원하고 싶지 않아서 신생팀 연고지도 정해지기 전에 응원하겠다고 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개랑들도 알겠지만 수원 연고지 결정은 삼성축구단 창단이 확정된 이후지..) 이 시기의 팬들 마인드였다면 04년, 06년, 그리고 13년의 저항들은 없었을 지도 몰라.
바꿔말하면 그만큼 10년 20년동안 우리 축구에서 팬들의 의식은 발전해 왔고 이제 연고지 이전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을 해 왔으며 그게 행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지. (물론 최초의 사례는 02년에 대전의 해체를 막은 팬들의 힘을 언급해야 겠지만, 연고지 이전설이 대대적으로 터진 뒤로 '무산'된 것은 정말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어려운 싸움이었다는 거야.)
축구문화는 TV중계가 많아진다고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관중이 많다고, 경기가 재밌다고 발전하는 것도 아니야. 단결된 축구팬의 학습과 응집, 행동에서 축구문화도 꽃피운다.
축하해, 성남빠들.
관중 없다고 많은 팬들이 비아냥 거리는 걸 십 년도 넘게 견뎌내야 했지만(물론 그것은 천안에서 이전해 온 업보이긴 하다)
결국 그대들은 이겼다.
단결, 투쟁.